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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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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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5-06 ㅣ No.172161

잘 되던 인터넷이 갑자기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급한 대로 전원을 끄고 다시 켜보았지만 그래도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그럴 때면 연결하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컴퓨터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인터넷 연결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인터넷은 회사에 연락해서 방법을 찾으면 될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이 염불이든 참선이든, 밀교든 현교든, 간화선이든 불교의 궁극적 깨달음을 얻게 해 주면 그 수행은 정법(正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로 걸어서 서울로 갈 때 목적지인 서울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나중에 서울에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불교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내가 체득한 경지가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나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교의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명료합니다. ‘번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고, , , 도의 사성제(四聖諦)로 요약됩니다.

 

사성제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뜻입니다.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고성제, 그런 고통의 원인은 내 마음 속의 탐욕, 분노, 우치(愚癡)와 같은 번뇌라는 집성제, 이들 번뇌를 모두 제거하여 고통이 사라지는 열반의 멸성제, 그리고 이렇게 번뇌를 제거하는 팔정도의 수행인 도성제입니다. , 불교수행의 길에서 최종 목표는 번뇌가 소멸한 열반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듯이, 그 어떤 수행법을 선택했어도 나에게 열반을 증득하게 해 주면 그 수행법은 정법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부처가 깨달음에 방해가 되면 그 부처마저도 버려야 한다.’ 임제 스님의 유명한 살불살조(殺佛殺祖)입니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은 나를 얽어매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셔버리라는 뜻입니다. 부처라는 관념, 조사나 아라한이라는 이름에 속박되면 절대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종교적 권위로 만들어진 우상을 부셔버리지 않고서 진정한 자유와 해탈을 이룰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안 되는 인터넷을 가지고 씨름했으면 인터넷 연결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행히 스마트폰 연결이라는 방법을 알았기에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 방법이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제자들에게는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갈릴래아라는 공간과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라는 인격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말씀을 들었고,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물리적인 법칙을 뛰어넘는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차원을 협조자.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옥이 흔들리고, 부서졌을 때, 바오로 사도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감옥은 더 이상 굴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불행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이라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명예라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권력이라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상이었습니다. 재물이라는 욕망은 가난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명예라는 욕망은 비움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권력이라는 욕망은 겸손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욕망을 가난과 비움 그리고 겸손으로 따듯하게 받아들이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재물, 명예, 권력에 젖어있던 간수는 사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난, 비움, 겸손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욕망의 우리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의 길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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