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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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으론 벅차네요...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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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동 [kimidyi] 쪽지 캡슐

2005-05-22 ㅣ No.2240

안녕하십니까?
저는 36살의 김일동이라는 남성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억울한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990년에 서울병무청에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찾아갔었습니다.
그런데 병무청 벽에 “특수부대 요원모집”이라는 벽보가 붙어 있길래 사복을 입은 담당자를 찾아가서 물어본 내용인 즉, 1차로 신원조회를 해서 이상이 없으면 2차로 체력장을 치러서 선발하는데, 특혜로는 월급이 많고, 무술을 많이 가르쳐 주며, 머리를 기르고, 휴가 때는 쌍권총을 차고 휴가를 나가며, 제대 후에는 안기부나 경찰에 특채로 입사시켜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서류를 접수하였고, 1차로 신원조회를 거쳐서 2차 체력장을 치러,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1990년 7월 30일에 특수부대에 입대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일정기간 교육을 받고 사복근무를 하는 헌병대나 보안사의 사복군인으로 생각했었는데 저의 그 생각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체력장이 끝나자 곧바로 합격자가 발표되었으며, 선발된 39명의 합격자는 곧장 버스에 승차하였고, 그 버스는 한밤중이 돼서야 낯선 연병장에 멈추어 서서 동기 39명을 하차시키고는 떠나가 버렸습니다.
적막감이 감도는 연병장 너머에 반딧불 불빛 같은 것이 여섯 개가 눈에 보였습니다.
잠시 후에 현관에 불이 켜졌고 그 현관엔 무섭게 생긴 건장한 세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 불빛이 세 사람의 안광이었음을 알았을 땐 정말로 소름이 오싹하더군요.
그곳은 제가 생각했던 헌병대나 보안사가 아닌 정보사(국군정보사령부)의 특수부대인 H.I.D 북파공작원 부대였습니다.
(그곳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체력단련도 원없이 했고, 맞기도 원없이 맞았고, 기합도 원없이 받았습니다.
인간체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야수들이 살아가는 산 속의 부대...
하루가 10년 같던 시간도 흘러서 어느덧 30개월 중에서 27개월을 근무하던 1992년 10월 26일.
제대를 세 달을 못 남긴 그 날, 헬기강하가 있었습니다.
심한 바람으로 강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기상조건이었음에도 신임 부대장(대령)은 강하를 명령하였고, 헬기는 강하 자들을 태우고 이륙하였고, 결국 강하 자들 중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강하는 중도에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헬기조종사도 바람이 너무 심해서 강하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데도 부대장은 부대원들의 생명이나 부상은 아랑곳없이 강하 명령을 내렸고, 저도 이날 척추가 꺾이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훈련장에서 지프차엔 억지로 악을 써서 몸을 실었는데, 팀에 도착하여 내리려니 온몸이 마비가 되어서 결국 운전병에게 업혀서 내렸습니다.
등에는 주먹만한 혹이 생겼고, 머리 밑으로는 손가락을 제외한 어느 한곳도 움직일 수가 없는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보내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당시 팀장(대위)이었던 박진우는 “제대가 세달도 안 남았는데 참아라”면서 병원에 보내 주질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을 팀에서 엎드려 있어야 했고, 화장실도 업혀서 갔고, 밥도 입에 넣어줘야만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디에다가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비참한 나날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남모르게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제대를 세달도 못 남기고 다친 것도 억울한데, 병원에는 보내줄 생각은 안하고, 나는 결국 이렇게 앉은뱅이나 식물인간이 되어서 나가게 되겠구나 싶은게...
그런데, 하늘도 저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제게 회생의 기회를 주시더군요.
한달 가량을 그런 생활을 한 후에, 마비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바닥을 기어다닐 수가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걷게도 되더군요.
팀장은 “내 말이 맞지 않느냐”며 “병원에 후송을 갔으면 제대를 세달도 안 남겨 놓고 의병전역을 할 뻔했지 않느냐”며 “특수부대에 와서 고생을 했는데 만기제대를 해야지 의병전역이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더군요.
저는 조기구보도 열외, 훈련도 열외 되어 조심조심 걸어다니다가 1993년 1월 21일 만기전역을 하였습니다.
전역 후, 서울대학교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척추가 30도 꺾여있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더 꺾일 거라면서, 빨리 수술을 해야지, 늦으면 평생 휠체어를 타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쳤을 당시에 바로 척추를 교정해줬더라면 수술은 안 해도 되었을 터인데 지금은 꺾인 상태로 뼈가 굳어서 수술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사 후 한달 가량을 기다리었고, 1993년 3월 초에 입원하여 두 차례의 전신마취 척추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 상태가 안 좋아져서 한 차례의 전신마취 척추수술을 또 받았습니다.
전신마취를 하면 간 기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 전신마취를 저는 세 차례나 받았으니 제 간의 상태가 어떻겠습니까?
지금까지 총 세 차례의 전신마취 척추수술을 받았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또 수술을 더 받아야할 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1993년 두 차례의 수술 후에 아버님께서 저를 보훈 대상자로 신청하려고 알아보셨는데, “군대에서 다친 기록이나 치료받은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해서 몇 달을 백방으로 민원을 넣고 쫓아 다니셔서야 정보사 감찰실에서 감찰을 나갔고, 그런 후에야 진상이 밝혀졌고, 결국 정보사에서 아버님께 서류를 만들어 드리게 되어, 그 서류를 접수시키고 그 당시 등촌등의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봐서 보훈 대상자 6급 2항(그 당시는 6급 2항이 최하등급이었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6급 2항은 군대에서 훈련 중에 낙하산 사고로 척추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 왼쪽 갈비뼈를 한마디 절단하였고, 척추에는 쇠를 박아 넣었으며, 양쪽 골반과 등과 옆구리의 큰 흉터를 입은 환자에게는 정말로 박하게 준 등급이었습니다.
어쨌든, 전 이렇게 보훈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글을 올리는 까닭은, 제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입니다.
강간이나 살인을 하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죄수도 척추를 다쳐서 전신마비가 되었다면 병원에 보내주는데, 어떻게 군에서 훈련 중에 낙하산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환자를 X-ray 사진 한번을 안 찍어 볼 수가 있으며, 진통제 한 알을 안 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찌, 인간이 인간한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였단 말입니까?!

제대 후부터 지금까지 맘놓고 한번을 뛰어 보질 못하였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 한번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학력은 고졸이지만, 체력 하나만큼은 남보다 월등하다고 자부하면서 살았었는데, 지금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몸뚱어리만 남았을 뿐입니다.
168cm, 65kg의 단단했던 몸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은 92kg의 뚱뚱보가 되어서, 심한 대인기피증과 자신감의 상실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왼쪽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서 운동을 못하고, 날씨가 흐리면 온몸이 쑤시고, 무거운 물건을 하나 옮기고 나면 며칠을 고생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습니다.
물론 부부관계도 원만하지 못합니다.
제 청춘은 이렇게, 한번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처참하게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를 허리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천재지변이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대원들의 생명을 우습게 여긴 부대장의 오만함과 진급욕심에 눈먼 팀장으로 말미암아 한 젊은이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것이었습니다.
강풍에서 강하를 하면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견된 상황을 무시한 채 무리한 명령으로 부상을 입게끔 만든 부대장이나 자신의 진급에 불이익이 올까봐 의도적으로 병원에 안보낸 팀장 등...
한 개인의 인생을 계획적으로 파멸시킨 대가를 이제라도 그 누군가나, 그 어떤 기관은 책임을 지고, 치러야 하지 않을까요?
10년을 넘도록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면서 북파공작원 출신이라는 것을 함구해야만 했던 과거......

현재, 정보사에서는 이 사건을 인정도, 부정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당시의 관련자들의 징계와 고의로 한 인간을 파멸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어서입니다.
지금까지 정보사나 국방부에서 저에게 해준 거라고는, 군 복무 중에 다쳤다는 서류를 늦게나마 발급해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관련자들의 징계와 도의적인 책임을 부탁드리며, 저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지금까지의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03.09.19 : 청와대에 인터넷으로 민원신청 함.
접수번호 : A0309-2796
2003.09.25 : 국방부장관님께 인터넷으로 ‘장관과의 대화방’에 민원신청 함.
2003.10.30 : 국회에 인터넷으로 진정신청 함.
2003.11.03 : 감사원에 인터넷으로 민원신청 함.
접수번호 : 10949, 문서접수번호 : 5581호
2003.11.07 : 국민고층처리위원회에 인터넷으로 민원신청 함.
접수번호 : 37389
2003.11.11 : 국회사무처의안과에서 우편물이 옴.
문서발송번호 : 9710100-2003-6941
저의 민원이 2003.10.30자로 국회 국방위원회로 회부되었다는 내용.
2003.11.13 : 감사원에서 우편물이 옴.
저의 민원을 국방부로 이첩시켰다는 내용
2003.11.14 :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우편물이 옴.
법률 제15조 제2항 제3호 규정에 따라 군 수사 업무를 관장하는 국방부장관이 처리하도록 하였다는 내용.
2003.11.19 : 한겨레신문(사회부 이지은 기자)에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냄.
2003.11.25 : 감사원에 재차 민원신청 함. (성의를 다해 달라는 내용)
접수번호 : 11204, 문서접수번호 : 6106호
2003.12.03 : 오마이뉴스에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냄.
2003.12.05 : 감사원에서 우편물이 옴
저의 민원을 또다시 국방부로 이첩시켰다는 내용.

등등......

세례명 : 요한(김일동)
주민등록번호 : 700423-1
현주소 : 강원도 원주시
E-mail : kimidyi@hanmail.net
군번 : 8800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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