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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839년 기해박해와 그 반대자들: 제1섭정 김유근, 예비신자 김정희, 형조판서 조병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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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기해박해와 그 반대자들 : ‘제1섭정’ 김유근, ‘예비신자’ 김정희, 형조판서 조병현
Ⅰ. 머리말 : 김정희와 김대건, 사제들의 서한 Ⅱ. 불교와 천주교: 김유근과 김정희의 우정 Ⅲ. 1837년, 박해의 차단 : 김유근-김정희-조병현 Ⅳ. 1839년, 기해박해와 반대자: 김유근, 김정희, 조병현 Ⅴ. 맺음말 : 반대자 3인의 귀결과 김정희
국문초록
본 연구는 1839년 기해박해에서 순교한 프랑스 사제 3인(앵베르, 모방, 샤스탕)과 1846년 순교한 김대건의 서한과 보고서를 중심으로 기해박해에 이르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 서한과 보고서를 조선의 관찬 자료와 비교하고 번역도 다시 검토하여 기존의 오류 몇 가지를 수정하였다.
위의 서한과 보고서에 의하면 안동김씨 정권기 천주교 박해를 막은 1등 공신은 정권의 실세인 김유근이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1836~37년 ‘남응중 반란사건’이 천주교와 연계되는 것을 차단하였다. 김유근은 죽음을 앞두고 천주교 세례[代洗]를 받았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천주교에 대한 그의 믿음이 돈독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는 왕실과 가문의 번성, 자신의 생명에 대한 기복, 그리고 북학과 서양 골동에 대한 호기심으로 천주교에 호의적이었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김유근은 중병에 걸려 식물인간이 되었고, 김정희와 조병현이 박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김유근이 부재한 조정의 권력투쟁에 밀려 조병현은 2개월 만에 형조판서를, 김정희는 3개월 만에 형조참판을 각각 사임하였다. 김대건은 김정희를 천주교 “예비신자”라고 언급했지만, 천주교에 대한 김정희의 호의는 김유근과 각별한 유대, 북학과 서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5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도진순(국립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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