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ㅣ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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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의 작성 과정과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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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의 작성 과정과 성격 Ⅰ. 머리말 Ⅱ. 『선별집』의 작성 과정 Ⅲ. 『약전』의 나머지 문서들 Ⅳ. 맺음말 - 바로잡아야 할 두 가지
국문초록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은 문서① 『조선 주요 순교자 선별집』, 문서② 「추가된 순교자 약전」, 문서③ 「임군집 요셉의 새 약전」, 문서④ 「순교자 역사를 위한 서설」, 문서⑤ 「순교자 역사의 증거 문서와 자료」, 문서⑥ 「순교자 역사 증거자료, 사형판결문」, 문서⑦ 「1846년(박해)」, 문서⑧ 「순교자 명단」 등 8개의 독립된 문서를 1책으로 합쳐 놓은 것이다.
문서①은 190명의 순교자 명단과 113명의 약전이 수록되어 있는 순교자 전기집이다. 이의 작성자는 다블뤼 주교지만, 이것의 기획자는 베르뇌 주교였다. 베르뇌 주교는 ‘완전한 조선천주교회사’를 작성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문서①과 『조선 순교자 역사 비망기』(이하 『비망기』) 작업을 지시했다. 문서①은 지금까지 교황청의 지시가 잘못 전해져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문서는 교황청의 지시와 무관하게 조선 교회에서 독자적으로 선정한 시복 대상자의 전기집이었다.
문서②는 문서①을 파리로 보낸 다음, 추가로 선정한 한덕운, 황심, 김호연, 전 베드로 등 4명에 대한 약전이며, 문서③은 1846년에 순교한 임군집의 약전이다. 임군집의 약전은 이미 프랑스에 있지만, 새로운 증언이 채록되면서 보완된 약전이다.
문서④는 조선의 다양한 풍습과 문화를 소개한 것으로, 『비망기』를 보완하기 위한 자료로 수집되었다. 문서⑤는 이순이 등 여러 순교자들의 서한을 수집해 놓은 것으로 문서① 작성에 활용되었다.
문서⑥은 이승훈 등 1801년에 처형된 56명의 사형판결문과 대제학 이만수가 지은 토사반교문(討邪頒敎文)을 모아 놓은 것이다. 문서①과 『비망기』 작성에 이용된 이 자료는 다블뤼 주교가 조보(朝報)를 입수하여 거기에 수록된 신자들의 ‘사형판결문’을 뽑아 만든 것이다.
문서⑦은 1846년에 발생한 병오박해에 대해, 김대건 신부의 체포부터 순교까지, 그리고 함께 체포된 신자들의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순교자의 개별 약전이 아니기 때문에 문서① 보다는 『비망기』와 관련된 문서라고 하겠다.
문서⑧은 문서①에 수록된 순교자가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은 것을 고려하여, 순교한 연도별로 명단을 다시 정리할 필요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①에는 1839년 이전에 순교한 초기 순교자들의 약전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문서는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문서②, ③, ⑧은 문서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문서④와 ⑦은 문서①보다는 『비망기』와의 연관성이 더 크다. 그리고 문서⑤와 ⑥은 문서①과 『비망기』에 모두 활용되고 있지만, 문서⑤는 문서①, 문서⑥은 『비망기』에서의 활용도가 더 높았다.
따라서 비록 8개의 문서가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 수록되어 있지만, 문서②, ③, ⑧만 문서①의 보유편이라고 할 수 있고, 나머지는 독립된 성격을 띤 문서라고 하겠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5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방상근(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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