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ㅣ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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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860~70년대 선교사제 재입국 과정에서 조선인 신자들의 활동과 순교 - 최지혁과 이병교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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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70년대 선교사제 재입국 과정에서 조선인 신자들의 활동과 순교 - 최지혁과 이병교를 중심으로 - Ⅰ. 머리말 Ⅱ. 1866~1868년, 선교사제의 수행원이자 길잡이 - 천주교 공인에 대한 희망 Ⅲ. 1868~1875년, 차쿠-조선의 연락망 확보와 정보 전달 - 선교사제의 재입국 준비 Ⅳ. 1876~1879년, 선교사제의 입국과 천주교회 재건 - 교회조직의 구축과 순교 Ⅴ. 맺음말 국문초록
이 글은 최지혁(요한)과 이병교(레오)를 중심으로 하여 1866~1870년대 선교사제의 재입국 과정에서 조선 신자들이 수행한 역할과 선교사제의 사목활동을 보좌하다가 체포되어 순교에 이르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그 교회사적 의의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1866년부터 1879년까지 선교사제의 재입국과 사목 과정에 참여한 조선 신자들의 활동과 순교를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1866년 선교사제의 탈출부터 1868년 말 차쿠 시노두스 이전까지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상하이와 체푸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선교사제들을 수행하면서 병인양요와 덕산굴총사건에 참여했다. 둘째는 1869년부터 1875년까지 시기이며, 시노두스 이후 차쿠 연락소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왕래하면서 조선내 소식을 전하고 선교사제 재입국을 준비하였다. 셋째는 1876년 선교사제들이 재입국한 이후 1878~1879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선교사제와 신자들이 체포되었는데, 선교사제들은 석방되었지만 옥에 갇혔던 신자들은 순교했다.
최지혁은 세 시기 모두에 걸쳐 주도적으로 선교사제의 재입국과 사목활동 보좌에 참여했다. 그는 1866년 당시 리델 신부가 조선을 떠나 중국으로 갈 때부터 참여했고, 1876년 선교사제의 재입국 성공과 1877년 리델 주교의 재입국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리델 주교의 집주인으로 주교를 보좌하다가 1878년 체포되어 감옥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조선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지혁은 선교사제 재입국과 선교사제의 사목활동 재개(지역 사목 방문)에 간여했던 다른 신자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병교는 첫째~둘째 시기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선교사제 영입 활동에 참여했고, 셋째 시기에는 가족들과 함께 선교사제를 수행·보좌했다. 1879년 드게트 신부 체포 당시 신부의 집주인이었으며 옥중에서 순교했다. 차쿠의 조선대목구 연락소를 왕래하면서 선교사제의 재입국에 참여한 김 프란치스코와 권치문(타대오), 김성흠(요한), 김대건 신부의 항해에 참여했고 선교사제의 재입국 당시 선장으로 활동했던 임성실(베드로), 블랑 주교의 복사이자 총회장으로서 사목 활동을 보좌하고 천주교서적 저술[번역]과 신자 교육, 전교 활동에 공헌을 한 김기호(김형옥, 요한) 등은 최지혁과 함께 활동하거나 그의 권유[지시]에 따라 참여했던 신자들이다.
* 이 논문은 2023년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학술연구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학술지 교회사학 제25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이석원(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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