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ㅣ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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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문의 과정에서 큰 배를 발견하기 - 신유사옥 당시 천주교 신자의 조율과 대박청래 사건의 형정적 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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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訊問)의 과정에서 ‘큰 배[大舶]’를 발견하기 - 신유사옥(1801) 당시 천주교 신자의 조율(照律)과 대박청래(大舶請來) 사건의 형정적 함의 - 1. 머리말 2. 천주교 신자의 징치(懲治)와 인율비부(引律比附) 3. ‘큰 배’의 발견과 「모반대역(謀反大逆)」 조율(照律) 4. 맺음말 국문 초록
이 연구는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 당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형정(刑政)의 변화를 살피고, 특히 유항검·유관검 형제 등 전라도 신자들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큰 배[大舶]’ 이야기의 발각을 빌미로 조선 조정이 천주교 신자들에게 최고위 형률인 「모반대역(謀反大逆)」을 조율한 의미를 살폈다. 진산사건(1791) 당시 「금지사무사술(禁止師巫邪術)」과 「발총(發塚)」으로 시작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형정은, 신유사옥에서는 대다수 신자에게 「조요서요언(造妖書妖言)」을 조율함으로써 확대되었다. 「조요서요언」은 천주교 신자들의 전교를 요언혹중(妖言惑衆)으로 규정지음으로써, 천주교 문제의 책임을 개인이 아닌 천주교 신자 전체에게 두었으며 형량 또한 상향된 것이었다. 또한 정약종과 주문모 신부에게는 「조요서요언」보다 중률(重律)이 조율되었는데, 정약종은 「범상부도(犯上不道)」 죄목으로 참수되었으며 주문모 신부는 ‘군율(軍律)’에 의해 효시(梟市)되었다. 「범상부도」와 ‘군율’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이미 「조요서요언」을 조율하고 있던 조선왕조가 천주교의 지도급 인사에게 보다 상향된 형률을 적용하는 한편, 주문모 신부에 대한 군율 집행은 청나라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주문모 신부의 처형 이후 전라도 신자들의 신문에서 ‘큰 배’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1780년대부터 추진된, 서양의 ‘큰 배’를 맞이하여 성직자를 영입하려는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계획이 발각된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이우집에 의해 “천주교 신자들이 큰 배를 불러와 한바탕 결판을 낸다.”는, ‘대박청래(大舶請來) 일장판결(一場判決)’이라는 팔자흉언(八字凶言)으로 폭로되었다. 추국장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들이 ‘대박청래’를 추진한 사실은 인정하였지만, “한바탕 결판을 낸다.”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대박청래’가 아닌 ‘일장판결’에 주안점을 두어 이들에게 「모반대역」을 조율하여 처형하였다. 이는 「백서」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던 황사영은 물론, 비슷한 혐의로 처형된 기해사옥(己亥邪獄)이나 병인사옥(丙寅邪獄)의 순교자들보다 가혹한 처사였다. 황사영은 「백서」가 발견됨에 따라 실제로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반역 행위를 모의한 정황이 확인되어 「모반대역」으로 처형되었으며, 기해사옥과 병인사옥의 순교자들은 서양(프랑스) 선교사를 몰래 국내로 데리고 와 활동한 점이 발각되어 국가를 배신한 「모반(謀叛)」죄의 실행범으로 처형되었다. 반면 황사영 「백서」 발견 이전에 「모반대역」이 조율되어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은 사실상 ‘대박청래’ 혐의만을 인정했을 뿐인데도 이 정황만으로 「모반」이 아닌 「모반대역」이 조율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신유사옥의 전개 과정에서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의 형량을 조심스레 상향시켜 나갔다. 조선 조정은 갖은 고문을 동원하여 천주교 신자들을 가혹하게 신문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왕조의 형정이 아무런 원칙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을 ‘범죄자’로 처형해야 했기 때문에, 그 형정은 원칙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견된 ‘큰 배’는, 막연하게 상상되던 서양 세력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가장 높은 형률인 「모반대역」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형정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 이 논문은 2023년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연구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임.
[교회사 연구 제63집, 2023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남호연(공군사관학교 역사·철학과 조교수)] 파일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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