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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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개화기 충청 지역의 교안과 프랑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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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2-31 ㅣ No.1807

개화기 충청 지역의 교안과 프랑스 선교사



1. 머리말

2. 충청 지역의 교세와 프랑스 선교사

3. 충청 지역의 교안 사건

4. 교안과 선교사의 역할

5. 맺음말



국문 초록

 

교안이란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모든 교(敎)·정(政), 교·민(民) 간의 분쟁(충돌)과 그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외교적 교섭 및 소송 사건을 말한다. 이 글은 선교사들이 재입국한 이후부터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까지 충청도에서 발생한 31건의 교안 사건을 분석한 것이다.

 

31건의 성격은 발생 원인으로 볼 때, 크게 ‘천주교에 대한 반감’과 ‘교회 및 양대인 자세(洋大人 藉勢)’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반감’ 성격의 교안이 12건이며, ‘자세’ 성격의 교안이 19건이었다. ‘반감’은 1895년 이전의 건수(9)가 이후(3)보다 많았고, ‘자세’와 관련된 교안은 1896년 이후의 건수(15)가 이전(4)보다 월등히 많았다. 1895년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반감’ 건수가 많고, 이후에는 ‘자세’ 건수가 많았는데, 이것은 1895년을 기점으로 천주교회의 위상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과 관련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내용은 기존의 연구 결과와 비슷하지만, 타지역에 비해 향촌의 지배 계층과 대립하는 건수가 많았고, 토지(박해 때 몰수된 토지 포함)와 관련된 교안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 그리고 교폐와 선교사를 분리하려는 움직임 등은 충청도 교안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교안은 ‘지방관과 선교사’ 단계에서 해결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중앙으로 보고되어 외부와 프랑스 공사관이 관여했는데, 31건 중 외교 사안으로 발전한 건수가 22건에 달했다. 그리고 처리 결과를 보면, 정부의 뜻대로 처리된 것이 8건이고, 나머지는 비록 결과를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교회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책이 모색되었다.

 

교안에 대한 선교사들의 태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교세의 증가와 교회의 위신과 관련된 사건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교인이 명백하게 잘못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방관의 판결을 따랐다. 다만 회장이나 복사가 관련된 사건은 대체로 이들의 행동을 비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교회사 연구 제63집, 2023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방상근(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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