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0일 (수)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연행 밀사 소통방식과 변화 - 천주교 밀사 기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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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2-31 ㅣ No.1810

연행 밀사 소통방식과 변화


- 천주교 밀사 기록을 중심으로 -



1. 머리말

2. 연행 사행과 밀사 소통방식

  1) 조선 후기 연행 사행

  2) 밀사 소통방식

3. 소통방식의 변화

  1) 조선대목구 설정 이전

  2) 브뤼기에르·앵베르 시기

  3) 페레올·베르뇌 시기

  4) 리델·블랑 시기

4. 맺음말



국문 초록

 

가톨릭 천주교회는 같은 믿음, 기도, 미사, 성사를 통해 하나로 일치되는 세계 보편교회이다. 따라서 지역교회와 교황청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한국처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라 하더라도 교황청과의 소통이 없으면 일치를 이룰 수 없다. 한국천주교 공동체는 교황청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했다. 유럽의 해상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중국에 천주교가 전해지고, 교황청은 마카오를 거점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와 소통망을 구축했다. 한국천주교회는 조선과 중국의 쇄국정책으로 소통로가 차단되었으나, 유일한 교류 통로인 연행 사행에 밀사를 파견하여 북경과 책문(변문), 심양 등에서 소통했다. 본 글에서는 선교 사제들 편지, 추안급국안 등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 소통방식 변화를 고찰하였다. 밀사들은 동지사행, 역행, 임시 사행을 이용해 사제 영입과 편지, 자금, 물품을 119회(연기 1회. 실패 18회) 소통한 것으로 파악된다. 밀사들의 소통방식은 조선대목구 설정, 요동대목구 설정, 병인박해로 크게 변화했다. 조선대목구 설정 전에는 ‘북경 직접 방식’을, 조선대목구 설정 후에는 ‘서만자 지원 방식’을 활용했고, 요동대목구 설정 후에는 ‘요동 지원 방식’을, 병인박해 후에는 ‘차쿠 직접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연행 밀사 소통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밀사들은 박해 시기 한국천주교회와 세계 가톨릭교회 간 소통을 유지했다. 둘째로 밀사들은 문제와 장애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극복했다. 셋째로 밀사들이 전달한 사료의 가치가 크다. 국내에서는 박해로 많은 사료가 사라졌지만, 밀사들이 전달해 남겨진 사료들은 역사를 바르게 기억하게 하고 신앙 조상들의 삶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사 연구 제64집, 2024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장환(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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