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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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둘러싼 논란 검토 - 조선교회 구성원들의 입장과 반응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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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2-31 ㅣ No.1811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둘러싼 논란 검토


- 조선교회 구성원들의 입장과 반응을 중심으로 -



1. 머리말

2. 조선교회의 상황

3. 여항덕(유방제) 신부의 입장

4. 조선 교우들의 반응

5. 맺음말



국문 초록

 

본고는 1833~1835년 사이에 발생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둘러싼 논란을 검토한 글이다. 조선의 신자들은 1811년 이래 꾸준히 성직자 영입을 추진하였고, 1834년에 입국한 중국인 여항덕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위한 선발대로서의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들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입국이 가시화되자 반대 입장을 취하였다.

 

이들이 내세운 반대 이유는, 주교의 외모가 조선인과 달라 발각될 위험이 크며, 발각될 경우 큰 박해로 이어져 조선교회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배의 출현으로 서양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상태도 주교의 입국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조선 신자들이 성직자 영입을 추진할 때 서양인을 거부한 적이 없으며, 또 당시 조선 교회가 처해 있던 상황도 주교의 입국이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선 신자들이 주교의 입국을 반대한 것은, 여항덕 신부의 입국이 결정된 상태에서 위험 요소가 있는 서양인 주교를 당장 받아들일 필요성이 감소했고, 여기에 본당(本堂)으로 인식하고 있던 북경 교회와 조선에 파견된 여항덕 신부의 반대 입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여항덕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아니라 피레스 페레이라 남경 주교를 자신의 장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10개월 정도 사목하면서 서양인 주교의 입국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결국 조선에 대한 재치권(裁治權) 문제로 브뤼기에르 주교의 입국에 부정적이었던 남경 주교와 북경 교회의 분위기가 여항덕 신부와 조선 교우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여기에 여항덕 신부의 조선에서의 사목 경험, 중국인 신부의 파견에 만족하며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 조선 교우들의 입장이 어우러지면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입국과 관련된 논란이 야기되었다고 하겠다.

 

[교회사 연구 제64집, 2024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방상근(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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