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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924년 상하이 주교회의(상하이 시노드)의 의의와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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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지상 중계] 한국교회사연구소·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제2회 국제심포지엄 1924년 상하이 주교회의(상하이 시노드)의 의의와 영향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중국교회는 안팎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성장했고, 선교지로서의 중국이 아닌 하나의 보편교회로 자리 잡아가려는 모색을 시도하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 중국은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었고, 특히 프랑스가 가진 선교 보호권은 여러 현장에서 의견이 충돌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을 위한 중국의 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공통된 열망의 노력은 마침내 1924년 상하이 주교회의(상하이 시노드)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상하이 주교회의의 결과로 현지화의 문제가 논의되었고, 특히 현지인 사제 양성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한편 상하이 주교회의의 결정 사항들은 비단 중국만의 안건이 아니었다. 1919년 당시 교황인 베네딕토 15세가 「Maximum Illud」(가장 위대한 임무)을 반포한 것도 선교지였던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세계교회의 흐름은 한국에도 적용되었고, 현지인 사제 양성의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상하이 주교회의라는 아시아 천주교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난 지 101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더 이상 현지화를 논의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규모가 확대되었고, 중국교회도 공산 국가의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나름대로 교세를 지켜왔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당시의 노력이 얼마나 시대적으로 의미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상하이 주교회의는 중국이 유럽 선교회의 선교지에서 지역의 보편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은 11월 15일(토) 서울대교구 영성센터 A104호에서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소장 이진현(라파엘) 신부의 개회사로 시작했다. 이어 멀리 바티칸에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이 영상으로 보내온 축사와,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정완현(베드로) 신부가 대독한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축사를 필두로, 이 심포지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고, 아무리 훌륭한 학문적 성과라 할지라도 신학적 전통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담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의 기조발언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심포지엄 주제로 들어가, 첫 번째 발표는 북경의 중국인민대학에 재직 중인 레오폴트 레이보(Leopold Leeb) 교수가 맡았는데, 여건상 행사장에 직접 오지는 못하고 줌(ZOOM)으로 화상 연결하였다. 신학자, 철학자, 중국학자이자 무엇보다 문헌학자인 레이보 교수의 첫 번째 발표인 “1924년 상하이 주교회의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는 1924년에 상하이 시노드가 개최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상하이 시노드의 결정 사항을 담은 라틴어 문헌이 1939년에 간행되었다가 1961년에 재간행된 바 있다. 약 300쪽에 달하는 이 문헌을 통해서 상하이 시노드가 개최되기 이전 초기의 상황 또한 살펴볼 수 있었다. 1803년 쓰촨에서 최초로 개최된 회의는 쓰촨대목구장 생 루이 가브리엘 토랭 뒤프레스(St. Louis Gabriel Taurin Dufresse, 1750~1815) 주교와 플로랑(Jean-Louis Florens, 1756~1814) 신부, 13명의 중국인 신부가 참석한 소규모였으나, 포교성성에서 이 문헌을 공식 승인했고, 이후로 중국과 주변 선교지, 한국과 일본, 베트남 북부까지 적용되었다. 1851년 상하이에서도 한차례 주교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중국을 4개의 관구로 나누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각 행정단위인 성(省)마다 교구가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즉 교계제도의 설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제건(祭巾)의 사용 등 사제들의 복식에 대한 논의와 사제 양성에 대한 것까지 언급되었으나 어떤 구체적인 결정을 맺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924년에 상하이 시노드가 개최됨으로써 중국교회를 위한 의미 있는 문헌들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또한 레이보 교수는 상하이 시노드가 이후로 한국과 일본 등 주변 지역에 미친 영향까지 두루 살펴봄으로써 상하이 시노드의 역사적 의의를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었다.
두 번째 발표는 중국안양사범대학의 류즈칭(刘志庆) 교수의 순서였다. 류즈칭 교수는 “1924년 상하이 주교회의가 중국 천주교 현지화에 미친 영향에 관한 개괄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상하이 주교회의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았다. 중국어로 발표하고 한국어로 옮기는 순차 통역으로 진행된 두 번째 발표의 내용은 상하이 주교회의의 결과로 교구 구분의 원칙, 현지인(중국인) 주교 임명의 건, 지역 신학교 설립, 중국어 성경 번역, 무엇보다 중국교회의 현지화에 대해 논의되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교구 구획에 있어서 중국의 행정적 경계를 참고하도록 한 것은 이후 교계제도의 수립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중국교회의 간청은 이후 교황청에 수용되어 기존 교구명 중에 지역 방위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들은 폐지되고, 주교좌가 있는 지역명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현지 주교에 대한 안건은 당시 중국 내의 57개 교구가 전부 외국 수도회 출신이 교구장을 맡았던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중국에 파견된 최초의 교황사절로 상하이 주교회의의 개최에 큰 영향을 미쳤던 첼소 코스탄티니(Celso Costantini, 剛恆毅, 1876~1958) 대주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주교회의 이후에 여섯 명의 중국인 사제가 최초로 주교품에 오를 수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에 재개된 세 번째 발표 “근대 중국 천주교의 전환점–상하이 공의회와 코스탄티니의 시대적 역할”은 강원대학교 사학과 최병욱 교수가 맡았다. 특히 이 발표를 통해 코스탄티니 대주교가 상하이 주교회의가 개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중국교회는 유럽 각국의 선교회, 특히 프랑스의 영향(선교 보호권)을 강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청에서 중국으로 사절을 보내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코스탄티니 대주교의 파견 이후로 중국에 보편교회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일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크게는 교황청의 선교 방침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코스탄티니 대주교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도 반영되었다. 특히 천주교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교회 건축의 토착화 적용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마지막 발표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이민석 책임연구원의 “1924년 상하이 시노드와 한국교회의 토착화–1919년 ‘막시뭄 일룻’의 반포와 평양지목구의 한국인 사제 양성을 중심으로”였다. 이 발표는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교회를 조금 벗어나 한국으로 시각을 돌리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상하이 주교회의와 흐름을 같이하는 한국교회의 노력을, 메리놀회가 관할하던 평양지목구의 현지인 사제 양성의 사례로 살펴보았다. 이 발표를 통해 이 시기 한국 천주교회 또한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생생한 변화를 함께 겪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표를 모두 마친 뒤에는 각 발표의 정해진 토론자의 질의와 발표자의 응답, 그리고 청중의 질의로 이루어진 토론 시간이 있었다. 제1 발표 토론은 개회사를 맡았던 서강대학교의 이진현 신부가, 제2 발표 토론은 아주대학교의 한상준 교수가, 제3 발표 토론은 교회사아카데미의 장정란 교수가, 마지막 토론은 수원교회사연구소의 이석원 연구실장이 맡았다.
이후로도 열띤 분위기 속에서 청중들과의 토론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토론의 좌장을 맡은 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회장인 충북보건과학대학교의 신의식 교수가 왜 상하이 시노드의 100주년이 아닌 101주년을 기념하는지에 대한 짤막한 보충 설명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조한건 신부의 마침 기도로 심포지엄 행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교회와 역사, 2025년 12월호, 김가흔(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원)] 0 29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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