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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시간 전례(성무일도) (2) 일곱 시간경의 특징과 핵심 요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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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시간 전례(성무일도) (2) 일곱 시간경의 특징과 핵심 요소
2013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하려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그분 손에는 검은 서류 가방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교황님의 새하얀 수단 탓에 더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교황님,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평범한 물건들이지요. 면도기, 일정 수첩, 읽을 책 한 권, 그리고 성무일도서.” 교황님의 가방에는 면도기 같은 일상용품 옆자리에 성무일도서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성무일도서는 탑승객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할 필수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추기경 시절에 하신 한 인터뷰에서도 성무일도서를 가지고 다니는 일의 중요성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성무일도서에 매우 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여는 것이 그 책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닫는 것도 그 책입니다. 여행할 때는 두 권의 성무일도서를 챙겨야 하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늘 가지고 다닙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일상에 스며든 기도, 특히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이 자기 몸의 일부처럼 여기는 기도가 바로 시간 전례(성무일도)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때가 되면 밥을 먹어 영양을 보충하듯, 교회의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돌아오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쳐 영혼의 기운을 차립니다.
“하루에도 일곱 번 당신을 찬양하니”(시편 119,164)
현행 로마 전례에서 시간 전례(성무일도)의 기도 시간은 모두 일곱 개가 있습니다. 먼저, “매일의 성무일도에 있어서 두 개의 축을 이루고”(「성무일도 총지침」 37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도로서 최고의 중요성을 지닌”(「성무일도 총지침」 40항) ‘아침기도’와 ‘저녁기도’가 있습니다. 동녘에 첫 햇살이 나타날 때 바치는 아침기도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우리 정신과 마음의 첫 움직임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리고 낮이 기울어 저녁이 될 때, 저물지 않는 빛이신 그리스도께 우리 희망을 두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억합니다. 교회는 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공동 기도에 참석할 수 없는 모든 신자들도 바치도록 적극 권장합니다(「성무일도 총지침」 40항).
다음으로, ‘독서기도’가 있습니다. 독서기도라는 명칭에서 보듯, 이 기도는 성경과 영성 저술가들의 저서에서 뽑은 훌륭한 본문들을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역사 안에서는 주로 밤에 또는 아침기도 전 이른 새벽에 이 기도를 바쳤지만, 오늘날에는 하루 중 묵상하기 가장 좋은 어느 시간이든 바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주님의 수난 사건들과 최초의 복음 선포를 둘러싼 사건들에 연관된 세 시간대에 기도를 바치던 전통을 물려받아 기도합니다. 오전 아홉 시 무렵에 ‘삼시경’, 정오 무렵에 ‘육시경’, 오후 세 시 무렵에 ‘구시경’을 바치는데, 이런 명칭들은 옛 그리스-로마 문화의 시간 구분에 따른 것입니다. 생활 규율에 따라 이 세 시간경을 다 바칠 수도 있고, 바쁘게 흘러가는 낮의 일과를 고려하여 세 시간경 중 낮의 그 시간에 제일 잘 맞는 시간경 하나만 골라 바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끝기도는 “자정이 지난 후라도 밤의 휴식을 취하기 전에 바치는 하루의 마지막 기도”(「성무일도 총지침」 84항)입니다.
시편과 찬가, 매우 중요하지만 넘기 힘든 문턱
위에서 말씀드린 일곱 시간경은 찬미가, 시편과 찬가(후렴과 함께), 독서와 응송, 기도(청원 기도, 주님의 기도, 마침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각 시간경의 특성에 따라 확장 또는 축소되기도 하고 변형 또는 생략되기도 하는데, 기본 구조는 언제나 같습니다. 그 가운데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시간 전례(성무일도)의 초기 진입 장벽이 되는 요소는 시편과 찬가입니다. 시편과 신구약 성경의 찬가 본문은 성령의 감도를 받은 노래이기에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특성을 더할 나위 없이 잘 살려주지만, 사실 매우 오래된 글이어서 어휘나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체도 아니어서 집중하기도 힘들고 산문으로 된 기도문도 아니어서 공감하며 따라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매주 수요일 일반 알현 때 하시는 교리 교육에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에 나오는 시편과 찬가들을 해설해야 할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선종으로 다 못 마친 부분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이어받아 마침표를 찍으셨던 것을 보면 후임 교황님 또한 그 필요에 상당히 공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시간 전례(성무일도)의 핵심을 이루는 시편과 찬가를 모르고 또 그 본문에 마음을 실을 수 없으면 이 기도를 꾸준히 바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차근차근 기도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시간을 들여 시편과 찬가를 ‘공략’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성무일도서에는 시편과 찬가 본문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장치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후렴입니다. 모든 시편과 찬가는 앞뒤에 후렴이 있습니다. 후렴은 본문의 주제나 중심 사상을 제시해 줍니다. 때로는 후렴이 없으면 떠오르지 않았을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생각을 열어 주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쓰인 시편 본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미리 드러내는지 짚어 주기도 합니다. 또 전례 시기나 축일에 따라 같은 시편에 다른 후렴이 붙으면서, 특정 전례일의 정신 안에서 시편과 찬가를 기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노래하는 시편 42(41)편을 봅시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 시편집 제2주간 월요일 아침기도에서 이 시편을 바칠 때 후렴은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입니다. 시편 본문의 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온 이 후렴은 인생 여정을 걸으며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며 희망을 키워가는 마음으로 시편을 바치게 합니다.
그러나 성주간 화요일에 같은 시편을 바칠 때의 후렴은 이렇게 바뀝니다. “주여, 나의 옳음을 판단하소서. 악하고 간사한 자에게서 나를 구하소서.” 겟세마니에서 고뇌에 잠긴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날 우리는 시편 42(41)편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치며, 그분의 쓰라린 수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편, 위령의 날에 같은 시편을 바칠 때 후렴은 하느님을 찾는 갈망과 희망을 담은 연옥 영혼들의 목소리가 되어 줍니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성모님의 군단, 2026년 2월호,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0 9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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