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8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자유게시판

03.01.월. 용서하여라.(루카 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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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칠등 [kcd159] 쪽지 캡슐

2021-03-01 ㅣ No.222108

03.01.월. 용서하여라.(루카 6, 37)

 

용서의

봄비가

내린다.

 

용서의

여정안에

나와 너가

있다.

 

용서는

어렵고

용서는

힘들다.

 

사람이

누군지를

묻는 은총의

사순시기이다.

 

불안하고

부족한

우리들 삶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더더욱

필요한 우리들

삶이다.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

관계이다.

 

너의 용서가

나를 살게한다.

 

나의 용서가

너를 찾는

은총이 된다.

 

단죄와 심판은

오늘을 죽인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자신을

보게하신다.

 

과거에 묶여있는

우리를 십자가로

자유롭게 하신다.

 

사람의 여정은

용서의 여정을

걸어간다.

 

용서의 실천이

서로를 살리고

닫혀있는 역사를

가능성의 역사로

바꾸어놓는다.

 

서로의 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십자가의 사순이다.

 

새로운 삶이란

용서의 삶이다.

 

용서는

사람을

살린다.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린다.

 

누간가의

피해자가

누군가의

가해자가 된다.

 

유한한 삶속에

용서의 여정이

있다.

 

용서는

어떤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모든 일상의

시간이다.

 

하느님의

자비의 순간이며

하느님 용서의

순간이다.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용서의 오늘이

있다.

 

용서는

살아있음의

가장 큰

은총이다.

 

나와 너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다.

 

사람과 용서

생명과 자비는

언제나 우리를

살게한다.

 

용서가

아름다운 것은

실천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로

바로 우리자신이

용서의 가장 큰

수혜자로

살고 있다.

 

용서와

용서사이에

하느님과 우리

사람이 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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