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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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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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4-18 ㅣ No.146182

1독서<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나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8

스테파노는 기적과 표징도 행하고(8) 설교도 했다(10-12,13-14). 앞의 단락을 고려하면 그가 식탁에 봉사했다”(2)고 말할 것도 같은데. 여기 단락에는 전혀 그런 말이 없다.

 

9

스테파노의 적수들은 해외에서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회당을 세우고 정착한 헬라계 유다인들. 또는 일시적으로 귀환한 헬라계 유다인들이다. “자유인들은 전쟁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석방되어 귀향한 이들이었다. “키레네는 북아프리카, 지금의 리비아에 있는 도시로서 거기에는 유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북아프리카, 지금의 이집트 항구 도시로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해외 유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칠십인역 그리스 성서를 펴내고 필로 같은 석학을 배출한 곳이다. 에페소 교회와 고린토 교회에서 활약한 명설교가 아폴도 알렉산드리아 태생 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이다. “길리기아의 수도 다르소는 사도 바오로의 출생지다. “아시아는 에페소 주변 지역이다.

 

11

모세를 모독하는 말은 하느님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거역하는 독성죄를 가리킨다. 13-14절에서는 스테파노가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는 말을 했다고 거짓 증인들이 증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거짓 증언을 할 수 있는 구실을 스테파노가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다교의 성전과 율법 자체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루카의 구세사적 구도에 따라 만민을 위한 보편적 구원이 더 이상 성전과 율법을 토대로 형성된 유다교 안에만 갇혀 있을 수 없음을 증언했을 뿐이다. 스테파노가 성전을 비판한 내용을 참조(7,48-50).

 

14

나는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어 버리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를 루카는 나름대로 다듬어 이곳을 헐고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 준 관습들도 고칠 것이다라고 개작했다. 실상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고 , 거짓 증인들이 예수께 뒤집어씌운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마르코도 사도행전 필자 루카도 주장한 사실에 유의하라.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는 비록 마르코14.58처럼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성전과 율법에 관하여 비판적 발언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일곱 지도자들은 예수의 비판정신을 계승했을 것이다.

 

15

그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 같았다는 말은, “스테파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눈여겨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께서 보였다 ...”와 직결된다. 이 둘의 상관관계를 밝히면 이렇다: 스테파노가 영광스러운 하느님과 부활하신 예수를 뵌 까닭에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같이 변했으리라.

 

 

 

복음<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22

호수 건너편은 예수가 빵의 기적을 행했던 호수의 동편.

 

23

주님이라는 그리스도론적 칭호는 부활한 예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므로 편집 때 추가되었을 것이다. 일부 사본에는 주님께서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이란 말이 없다.

 

25

당시 상황에 걸맞은 표현이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예수가 홀로 물 위를 걸어온 것을 상기시킨다.

 

26

예수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알고서 그것을 들추어낸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체험한 빵의 기적만을 언급한다. , 제자들만이 물 위를 걸은 예수를 체험했음을 시사한다. “표징을 본다란 예수의 행위에서 신적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이다. 기적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보고 파악함을 가리킨다. 예수를 찾아온 이들에게는 빵의 기적이 아직 그런 의미로 파악되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된 셈이다.

 

27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길이 남아 있을 양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약속된 양식으로 언급된다. 이 양식은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양식으로서 이른바 길이 남아 있을 양식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양식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문맥상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아들을 뜻한다.

 

따라서 이 양식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 사람의 아들이 주게 될 천상적 선물이다. “사람의 아들이 줄 것입니다라는 미래적 표현이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 양식은 구원의 선물로서 먹고 마시도록 제공될 예수의 살과 피곧 성체성사적 성물로서의 음식과 음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난 문맥상 예수 자신이 계시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빵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자는 현존하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며 또한 예수 자신이다.

 

이 예수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 때문에 자신이 곧 구원의 선물을 주는 분이요 또한 자신을 음식과 음료로 제공하기 때문에 다시 하늘로 올라간 사람의 아들로서 구원의 선물. 곧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 줄 양식이란 신적 생명을 지닌 예수 자신과 그를 통해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과 동시에 성사적 음식과 음료와도 관련된 표현이라고 폭넓게 봐야 한다.

 

인정하다는 원래 의미는 봉인하다”, “날인하다란 뜻인데, 이 동사가 사용된 3.33의 맥락과 현 문맥에 따라 인정하다로 번역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의 아들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확증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말하고 길이 남아 있을 양식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하느님이란 표현은 파견된 사람의 아들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시사한다.

 

28

예수의 말을 오해한 질문이다. , “힘쓰시오란 말을 오해하여 일들로 생각한 것이다. 사실상 하느님의 일들은 하느님 자신의 행위이고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이해하고 찬미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다만 하느님에 의해 요구되는 을 뜻할 뿐이다.

 

29

하느님의 일들이 예수의 대답에서는 단수형태. 하느님의 일로 언급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은 곧 당신이 파견한 이를 믿는 것 하나뿐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이 파견한 이를 믿는 인간의 행위 또는 태도다. 하느님의 요청 또는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바로 이것을 하느님은 원하시며, 이것을 하느님의 일로서의 믿음이 인간의 성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원의에 따른 인간의 태도 또는 행위로 부각된다.

 

 

#. 이 대목에서 먹는 것생명을 얻는 것이 근본 주제로 언급된다. 그러나 51ㄷ절을 분기점으로 하여 주제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에서 사람의 아들의 살먹는 것도 비유적 의미에서 성사적 의미로 크게 바뀐다. 특히 51-58절은 공관복음의 최후 만찬 전승과 비교될 수 있는 이론바 성체성사론적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자기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계시한 예수의 말씀에 바탕을 둔다. 바로 이 점이 공관복음과 크게 다르다. 예수의 이 자기계시는 빵의 기적과 물 위를 걸은 기적에서 예시된 내용에 터를 두고 전개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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