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순롓길153처(나주순교자기념성당/무학당/노안성당/목포성지/다산초당)

스크랩 인쇄

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5-19 ㅣ No.100938

 

프로파일    
   




어젯밤 하늘높이 환하게 떠 계시던 나주성당 예수님이..






오늘 이 아침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실까 ....궁금키도 해서

주일 아침 6시 20분경 이른시간에 도착해 보니.


깜깜하던 어젯밤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성당 오르는 길 양쪽이 온통

음이온 세계인냥 초록과 싱그러움과 생명의 지절대는 소리들이 아침을 깨워댄다.

동굴안에 계신 한복차림의 성모님과 아기도령 예수님께 오늘도 촛불의 봉헌으로

하루를 열어가며 묵주의 구슬알 돌려간다.

은총의 가~득하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5월1일 성모성월이 시작되는 첫날 첫시간을 나주땅에서 리노할매와 관산동성당

온 가족들을 위해 드리는 촛불봉헌은 또한 감사로움으로 가슴을 뛰게 한다.

성전앞 예수님께 꿇어앉아 묵주한단으로 인사드리고...나와

맑은 영혼으로 오르는 십자가의 산길 또한 이 아침 새로움을 더해준다.

85년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큰 나무숲으로 우거져있는 나주성당내에 있는 순교자 기념성당은..

이춘화베드로/강영원바오로/유치성안드레아/유문모바오로/등 네분의 위대한 믿음과

삶을 기리기위해 세워진 빈무덤 형태의 경당이다

돌무더기를 쏟아 육신을 으깨어 버리는 혹독한 형벌인 석침형과 물에 적신 창호지를 한 장 한 장 뒤덮어

질식사 시키는 백지사형을 당했던 순교터인 무학당 순교터(현/나주초등학교 정원)의 흙을 취토하여

이곳에 순교자 묘소를 만들었다 한다.

또한 나주성당 초대주임이자 제5대 교구장을 역임한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이 세월의

비껴감속에서도 그날의 진실을 전해주는듯 묵묵히 앉아 있다.

그날의 보이지않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와 순교터가 있는

무학당 을 찾아 나주초등학교 정원앞에 표지석으로 앉아있는 장소를 발견하곤

신사임당 상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곳 정원을 후대의 자손들이 기억하고

기려주기를 기도하며 7시50분... 다음 순례지인 노안성당을 찾아 나선다.

주소를 찍고 산골짝 길을 뱅글뱅글 몇번을 돌아도 나타나지 않는 노안성당을

포기하고 가야하나? 할즈음 저만치 밭에서 일하는 농부부부를 발견하곤

"노안성당이 어디쯤 되냐고?" 물었더니 금세 저어기~ 돌아 쭈욱 올라가면 있다는

신자부부는 이 아침 또 우리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길인듯 깨달아진다.


깊은 산골짝 그림같이 예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오래된 성당또한 온통 주위는

나무숲이 우거진 산으로 휴양지 같은 느낌이다.

1908년 설립된 노안본당은 나주 지역 최초의 본당이라한다.

지금의 성당은 1927년에 지어진 건물을 토대로 계속해서 증ㆍ개축돼온 성당이라한다.

1894년 천주교 신자 정락 요한이 박해를 피해 서울을 떠나 함평군 나산면에 정착.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약봉지에 천주경과 성모경을 써주며 신자들을 모아나갔다.

당시 양천리에서 한약방을 하던 이진서가 교리를 공부하여 세례를 받게 되면서 계량 공소가 설립되었다.


1908년 계량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신부로 투르뇌 빅톨 신부가 부임.

1910년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그 부지에 일자형 초가 성당을 건립.

직접 벽돌을 만들어 사제관을 건립하던 중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건립이 미루어지다가,

1927년 벽돌조 사제관을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하여 준공.

1935년 5월 계량 본당에서 노안 본당으로 명칭을 변경.


1984년 3월 까리따스수녀회의 분원이 개설되었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이곳 또한

지금은 그날의 영화?는 간곳없고.... 외롭고 쓸쓸한 채 예수님과 성모님 두분만

농사철 바쁜 신자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아이구~ 예수님 이곳 찾아온다꼬 식겁했습니다....


많은 사제와 신자들이 거쳐간 오래된 성전에 앉아 시간의 덧없음을

내려놓으며 성모님과 함께 청하는 묵주의 기도를 겸허한 마음으로

올려드리고 목포성지를 향해 출발해 가는 아침 9시 20분이다.

10시 조금넘어 도착한 목포성지 산정동 성당은 조선교구 8대 교구장인

뮈텔주교에 의해 나바위 성당과 함께 1897년에 설립된 광주대교구 첫 본당이라한다.


성지에는 레지오 마리애 기념성당과 역사박물관. 한국 레지오마리애 기념관이 있다.

성지외부에는 순교자 현양탑, 성모광장. 십자가의 길. 성모칠고 묵상길. 성경묵상 조형물

대형 예수성심상과 은혜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넓다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려다본 성전은 "꺄악~ 놀랄정도로 으리으리 크기도하다.

이건 무슨 외국영화에서나 볼법한 웅장한 궁전건물이지..."

바깥으로 난 길다란 돌계단을 한참을 올라가서야 저 꼭대기 성전에 다다른다.

번쩍번쩍.... 윤이나는 성전문을 밀고 들어서니.... 또 한번 끼악~~!!

서울 횃불선교센타에 앉아있던 파이프 오르간 만큼이나 큰 대형 오르간이 온 벽을 가득채우며

그 넓은 성전에 균열이라도 갈듯한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작고 여린 자매의 앙징스런 손과 발이 짚어대는 건반이 저리도 요란한 소리를 질러대다니..

시골 마당 작은 공소 사랑에 열려있던 마음은 작은 상채기라도 난양 오금을 못편다.

온통 번쩍거리는 황금색 찬란함 속에서 우아스런 예수님의 고통또한 맞지않는 옷같아

묵주한단의 기도로 끝내고 얼른 돌아서 나온다.

아마도 이정도의 성전크기와 사이즈라면 신자수도 어마어마 하리라~ 그것이 궁금키도

했는데.... 주일 딱 한대있는 10시반 교중미사라는데... 어째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은

별로 없는게.... 참 ! 이상타!.... 차고 넘쳐야할 사람들의 행렬은 도무지 볼수가 없으니

괜한 걱정이 밀려와 안타까와 지려는 마음으로 저 아래 십자가의 길 1처로 걸어내려간다...

역사적 예술적 신앙적인 면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는 성당에 교황님에 의해 그 특전이 부여되는 성당으로

이곳 산정동성당이 우리나라에서 첫번째 준 대성전이라고 하는 데 교황청이 인정해준 곳이라

이리도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나 보다...

크기와 규모로 봐선 리노할매 생각엔 여의도 한복판 순복음교회의 신도수만큼은 돼야

운영이 가능할텐데 괜시리 걱정스런 오지랍 한번 또 펼쳐본다.

  

일찌감치 서울길 올라야하는 조바심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강진 다산초당을 향해

또 달려가는 그곳엔 또 어떤 역사의 사람들이 마중나와 줄려나~~?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다

한다. .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생활하시는 동안

『목민심서』『경세유표』등 6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 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직접 병풍바위에「丁石」이라는 글자를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는 높은 산 기슭이 있다.

다산초당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하며, 근처에 줄지어 있는 카페며 민박들이 예사롭지 않음이..

처음엔 세상에 왠 천주교인들이 이리도 많이 순례를 올까? 싶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더라.

등산코스만큼이나 높고 가파른 길하며... 다산의 고향 남양주와 더불어 온 나라 국민들이 모르지않을

정도의 박학다식한 학자이니 전국에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것일테다.

순례길보다는 관광등산객들틈에 섞여 숨헐떡이며 올라가던 가파른 작은 초당은

여전히 쓸쓸하고 고독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게 그날의 다산선생의 초야의 삶을

떠올려주며 그분의 후손으로 이땅에 태어나 살고있음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산을 내려왔다.

2시안되어 귀경길 오르는 데 느닷없이 또 나타나는 물고기 한마리가

졸지말고 정신바짝 차리라고... 깜빡깜빡 .... 에구~ 불안스런 표시등!!

성령이시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수 있게 함께 해주세요~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315 4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