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6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추풍령 고갯길에~♬순롓길172처(김천황금성당/칠곡가실성당/신나무골성지/한티순교성지/비산성당/새방골성당/복자성당)

스크랩 인쇄

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7-15 ㅣ No.101117

 

프로파일        
"우리딸 결혼식에 꼭 형님과 참석해주십사는" 김용근 마티아님의 초대에

"햇살가득 쏟아져 내리는 은총의 땅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신혼 부부를 위해

온마음으로 기도해드리는게 우리가 참석해서 밥한그릇 먹고 박수쳐주고 오는 것보다

몇배로 귀한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거라는" 약속으로 토요일 새벽 5시40분...

내유동 골짜기를 빠져나와 달려가는 대구교구 김천 황금성당에로의 길이다.


안동교구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달려가는 고속도로는 오늘도 우리부부의

전세 길마냥 쭉쭉 ~ 뻗어 가는 중부 고속도로의 매끄러운 길이다.

오늘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은총의 주님께서 평화와 기쁨의

만남들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하며 복잡하고 바쁜 도시들을 빠져 달아난다.


어젯밤 10시안되어 잠자리에 들어 새벽5시까지 나름 푹~ 자고일어났던 리노할배는

오늘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연신 하품으로 졸림을 하소연해대어 군데군데마다

눈에 띄는 졸림터에서 쉬어가려 주차를 해댄다.


"우~~우~ 찌린내가 장난아니게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걸 보면 청소의 손길이

뜸하기도 하거니와 마구잡이로 싸대고 달아나는 몰양심들의 한몫도 거들고 있음이리라.


세면대 가득히 죽어 붙어있는 하루살이들의 시체들을?.. 휴지로 싸그리 닦아내고 물을

끼얹으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작은 칭찬이라도 받아보려는 감추인 속내를 품어안고..

괜시리 미안해지는 지린내의 화장실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앉으며 다시 출발하는 머나먼

오늘의 여정이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졸음을 쫓기위해 시작한 이바구는 까마득한 2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주교좌성당 용두산공원 아래 중앙성당에서 세례받은 교리동기인 우리 부부는 ....

20대 30대를 함께 살아온 하느님 보시기에 꽤 괜찮은 젊은이 들이었으리라....

깨몽을 꾸어본다.


*30대 시간엔....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물위에 다리가 되어란 수교회를

맡아 마음을 다한 열정으로 하느님을 배우기 시작했고...

*40대 시간엔.... 젊은 가장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대건회에 몸담아 고양시 능곡본당에서

몸으로 뛰어가며 신앙의 불꽃을 태워갔고.....


*50대 시간엔.... 고양시 원당성당에서 하느님이 젤로 사족을 못쓰시며 흡족해 하신다는

성가대에 몸담아 죽어나 사나 우리는 성가대 귀신인기라 푹 빠져 버려 아들래미, 딸래미

모두 성악공부, 오르간 공부시키느라 평생을 뼛골 빠지게 덕분에 댓가를 치뤄왔던 것이다.


*60대 70대 시간엔... 오랜광야 생활로 많이도 단련되었겠다 여기신 우리 하느님 아부지

주님의 밥이 되라... 성당 가족들의 밥이 되라신듯 회장 책임까지 지워주시어 꼼짝달싹

못하게 하시더니....


작년에야 우리에게 세상 자유 쬐끔 누리고 오라고 성지순례의 길 허락하셨다고 우리부부는

의심없는 믿음의 길 아주아주 마음 편하게 걸어가고 있다며...징한~ 코로나에게도 고마와한다.


이제 한세상 열심히 잘 살다 황혼길 마루턱 두손잡고

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온유,절제의 9가지 성령열매

보따리 잘묶어 들고 오라시는것 같은데 내말이 맞제요?..


"반석 아부지... 잠이 확~ 깨 부리네요.. 오데쯤 왔는교?.."


곤지암(광주, 용인)길 좀 막히더니 이내 열리고 나머지는 통과~~

9시5분경 옥천휴게소를 지나가며 떠오르는 옥천성당과 옥천댁 아가타님의

정다움이 느껴져와 소리없는 웃음을 지어본다.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고개를 9시49분에 넘어간다.

또 밀려오려는 졸음을 쫓으려고 노래를 흥얼거려대며 몇번을 반복해가건만

젊었을적 친숙했던 그 노래는 도대체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고갯길에 한많은 사연~

음으므을~ 음음음을 ~ 주름진 그얼굴에 ***이 가득....

그모습~ 어렸구나~ 추풍령~응 고오개~~ 으쌰~쌰 ♬ 잠깨려고~ 별짓을~다한다.


10시2분 드디어 도착한 김천땅 초입엔 근사하게 상모를 돌리고있는

조형물과 함께 얼쑤~~!라는 글귀가 따라붙는 벽화가 괜히 신바람이 난다.

 

40분경 도착한 황금동성당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소백산맥을 넘어온 충청 전라 경상도의 신자들이

김천 깊은 산중에 정착하였고 1882년부터 김보록 신부가 경상도 전역을 순회

선교활동에 나서면서 신앙의 싹을 틔워 나갔다한다.


김천지역 신자는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10여가구 20여명으로 칠곡군의 현

낙산본당인 가실본당 관할이었다가 복음이 자연스레 퍼져나가 대구본당과

가실 본당에 이어 대구교구 세번째 본당으로 문을 열었다 한다.

커다란 벽화가 짠~하고 나타나는 성전앞 제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께

신비의 한단을 바쳐올리며 리노할매 눈에 비친 둥근 벽화속 3개의 파도아래

김대건 신부님의 라파엘호가 갈팡질팡 어지러운 것같은 느낌으로 와닿는 건

순전히 리노할매 혼자만의 시대를 넘나드는 착시현상인지.... 묵상해본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 성모당 앞에서 촛불 12개를 봉헌하며

오늘 함께 걸어갈 모든 순례가정들을 위해 기도올리고.... 십자가의

14개 길을 오늘도 성모님 손잡고 걸어간다.

빌라도보다 뚱뚱한 예수님을 참 이상타 여기며 그늘하나 없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요나의 그늘을 넘보고 싶은 간절함도 일어나더라.~

십자가길 마지막에 서있는 유시몬과 동료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자현양비

앞에서 깊은 절을 올려본다....

친절한 어느 자매님의 도움으로 옛성전까지 들어가 묵주1단을 올리며

향수같은 큼큼한 내음속에 앉아 편안하게 머물렀다 나온다.

"역시~ 우리에겐 이 분위기가 딱 어울린다 카이~"


11시20분에 출발하여 12시 5분경에 도착한 가실성당은

안나성녀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좀 특이한 어머니의 어머니 성당이다.


이곳 또한 성전안 예수님께 인사드리고 신비의 일단을 봉헌한후 나와 순례길

일상의 기도 숲속의 산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참 많이도 올라간다.

청주교구의 감곡에 계신 성모님따라 오르던 십자가의 길은 비교도 안될만큼

길고도 먼 산길을 꼭대기까지 걸어가서야 끝이나는가 했더니 다시 갔던길

돌아서 내려오란다.....! 에구머니나~ 한참 길을 다시 돌아 내려가라고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 칠곡 가실성당은

대구의 계산성당을 제외하면 경북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1895년 초대 신부인

가밀로 파이아스 신부가 다섯 칸 규모의 기와집을 본당으로 사용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6.25 전쟁 때에는 남과 북 양측이 야전병원으로 사용하였던 역사적인 현장이며

치열한 낙동강 전투 와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오늘에 이른것 모두가 하느님의 도우심의

믿음을 간직한 곳이라 한다.


거의 모든 대구교구를 안고 계시는 루르드의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다음 순례처인 신나무골 성지를 향해 출발해가는 1시 25분의 시각이다.

주차장 마당에 하늘높이 솟아계신 예수성심상에 인사드리며 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성지입구엔 김보록 신부의 흉상이 어서오라고 우리를 반긴다.

여기도 계시는 파랑색 허리띠의 루르드 성모님께 촛불밝혀 인사드리고 십자모양의

한옥성전에 올라들어 묵주의 일단 바쳐드리며 예수님께 세번째 인사를 드린다.

관산동성당 공동체를 위한 다음 주일미사 봉헌을 올려드리고 나와 이선이 엘리사벳의

순교자 무덤을 둘러싸고있는 오늘 세번째의 십자가의 길을 폭염으로 달구어진

산계단 나무길을 좀 힘들어 하며 걸어올라간다.

배도령이란 아기와 함께 옥에 갇혀 고문과 배교의 강요속을 견뎌내다 시퍼런 작두날에

목이 잘려 순교한 젊은 여인의 신앙앞에 오늘 늙은 할미는 부끄럽다. 많이~


신나무골은 신자들이 나무아래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진다한다.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를 품은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지로서 대구의 첫 본당인

이곳은 배론성지와 함께 가장 유서깊은 박해시대 교우촌이라 전해온다한다.

저만치 산아래 은퇴한 수녀들의 보금자리건물이 벽돌색 옷입고 단아하게

앉아있고....

그 아래 한옥 성당이 그림같이 앉아있는 신. 구의 멋 뜰어진 조화또한

순례객의 눈길을 호사롭게 한다.


스템프를 찾아 찍고 2시 25분에 출발한 신나무골 성지를 한시간여 동안 찾아

올라가는 한티성지는...

팔공산 국립공원 가사산성을 오르고 또 오르는 이 길 또한 만만찮은 높고 구불진 산골

길이다.

야영장, 교회청소년 수련원, 무인모텔. 리조트. 온갖 먹거리식당들. 이

높은 꼭대기까지 포진해있음이 유명한 팔공산 자락이라 그런가...?

우~와! 이런 꼭대기까지 찻길또한 기똥차게 뚫려있다.

 

한티피정의 집 이정표와 함께 나타난 산꼭대기 순교성지 한티는...

대구에서 북쪽으로 28km. 행정구역으로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위치한 한티는 해발 600m 산중턱 고갯길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 한티는 대구에서 군위.의성으로 넘어가는 큰 산 고개 즉 "한티" 산골마을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몸을 숨긴 교우촌이다. 그들이 하느님을 증거 하다

처형을 당한 곳이며 또한 그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순교 성지이다.

한티 순교 성지는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으로

1815년경부터 박해를 피해 모여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가 한창인

1868년에 모두 순교하고 묻힌 거룩한 땅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37기의 순교자 묘는 오솔길을 따라 참배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어

14처 모든 길에 각처마다 무명순교자들의 묘와 주님의 십자가석이 함께 고통의 길

걸어가게 만든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는 묵상의 길이다.

 

순례객 성전안 주님께 인사드리고 나와 저만치 떨어져있는 억새마을 이집저집을 둘러보며

호롱불 아래 기도손 모으고 천주님께 감사드리던 가족들의 가난한 행복들이 진정 천국이었으리라

믿어보며 먼 후대의 오늘에도 살아있는 신앙의 선조들을 부러워해본다.

평화의 전당 억새마을... 빛나는 보석이여~!...


순교자 묘역 오르기전 입구 산으로 오르는 길에 14미터의 대형 큰 십자가가 하늘높이

세워져있다.

그 곁으로 옹기종기 크고작은 돌조각들이 사람 형상마냥 서있는 모습또한

기록을 살펴보니 그날의 한티마을 순교자들의 형상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하는 모습으로 죽어갔다는 살아있는 전설같은 모습들이다.

오늘 이 한티에서의 십자가길은 사제들을 위한 봉헌의 마음으로 성모님과 함께

나름 비장한 믿음으로 오른다.

온 산이 모두 순교자 묘역으로 꾸며져있는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는 그분들을

보듬어 안고계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느껴가는 귀하고 은혜로운

십자가의 길이다.

헉헉~ 거리며 올라가는 이길 또한 만만찮건만 감히 순교자들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가실성당 십사처닮은 이길을 오늘 두번째로 걸어올라 다시 돌아내려온다.

4시52분에 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은 대구 비산성당을 향해 출발해 5시 47분도착한다.


토요일 청소년 미사가 끝난후에도 성전에서 합동 교리중인 관계로 구석자리에 앉아

삼종기도와 함께 묵주한단으로 주님께 인사드리고 주차장도 좁고 모든공간이 다 비좁은 관계로

바로 물러나온다 순례도장만 찍고.....내 맘대로 앉았다 왔다.

대구시 서구 북비산로 67길에 있는 비산(날뫼)성당은 경상 감영의 사형터의 하나이던

교우촌으로 병인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신 하느님의 종 133위

이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선대 때부터 교우촌 신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윤일 성인의 유해가 지나간 곳을 따라 순례를 하려면, 대구 관덕정 순교성지와 비산 성당을 거쳐야 한다


[이윤일 요한 성인 유해 이장 길]

관덕정 순교기념관ㅡ 비산성당ㅡ 용인 묵리ㅡ 미리내 성지ㅡ성모당ㅡ관덕정 순교기념관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따르면 '날뫼'에 교우촌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노파'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도시(대구)에 아주열심한 노파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노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여 많은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우촌을 세웠고,

철저한 교리 교육과 신심의 모범으로 그 교우촌을 지탱하여 왔습니다.” 19번째 편지중~


부지런히 그곳을 떠나와 새방골성당에 6시33분 도착하여 파랑허리띠의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성전안으로 들어가 또 예수님 알현하며 신비의 한단을 바쳐드리고 나오는데

저녁미사참례를 위해 일찌감치 성전을 들어오는 노자매님이 "우리성당을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진심을 담아 인사해준다. "에그~ 마음이 와이리 따뜻해 지노~"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새방골성당은 1888년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토 김보록 신부가 머문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교우촌으로 경북 칠곡 신나무골에 이어 경상도의 두 번째 본당이다.

 

김보록 신부는 1885년 경북 칠곡 신나무골 성지에 대구경북 최초의 본당을 만들고 정착했다가

이후 새방골로 거처를 옮겼으며, 후에 대구 성당의 상징인 계산 주교좌대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를 지냈다.


새방골 성당은 천주교 대구 대교구 소속본당으로서 프랑스 선교사 김보록신부가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 이후 대구본당의 초대신부로 칠곡 연화리의 신나무골을 거쳐

1888년 이곳에 옴으로써 형성된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성당이다

장씨 집안, 전씨 집안, 조씨 집안 및 조창대 가정, 그리고 유(兪)씨 집안도 이곳에 살았다.

그뿐 아니라 경신박해 때 이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달비골(지금의 상인동)에는

한티에서 순교자 전 사베리오와 전 바오로 형제가 이사를 왔다.


병인박해 때는 이곳 신자들이 한티 등지로 피난을 가거나 이곳에 남았다가 관헌에게 체포되어

매를 맞고 풀려나오기도 했다. 서상돈 아우구스티노와 삼촌인 서익순 요한 가정은 한티로 피난을 갔다.


1867년, 박해가 잠잠해지자 서익순 요한은 박해가 끝난 줄 알고 날뫼의 이 공사가와

대구집으로 돌아오다가 서울 포졸들에게 잡혀 압송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1868년 서울 절두산에서 순교하였다.

문경 한실로 피난을 갔던 서태순 베드로도 그곳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상주 감옥에서 순교했다.


새방골은 경신박해를 전후해 신자들이 살기시작하였고 병인박해가 끝난뒤 더 큰 교우촌이 되었다.

경상도 순회 선교사였던 로베르(김보록)신부는 대구의 선교를 위해 신나무골에서 대구와 가까운

새방골로 옮겨왔다.


로베르 신부가 이곳에 은신해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옆집에 화재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것을 신기하다고 하며

하늘이 이집을 보호하신게 틀림없다고 믿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 종교를 배우고 싶어

하며 찾아왔습니다. 집의 일부는 불에 탔지만 대신 미신에 빠진 이들 마음에 신앙의

불을 지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사고를 이용하여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로베르서한중)


새방골성당은 계산성당의 전신이며 2008변 120주년을 기념하며 김보록(로베르)

신부의 흉상이 제막되었다고 한다.


6시51분 대구 동구 신천동에 있는 복자성당을 찾아 달려간다

토요특전미사를 여기서 참례하기위해 부지런히 달려와 어스럼 어둠이 내려앉는

동굴벽속에 계신 성모님께 깊은 절하고 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자리에 앉는다.

가는성당마다 제일먼저 신경을 쓰는 스피커소리는 일종의 징크스같은 현상까지 일게한다.


정석현베드로 신부님계실땐 강론말씀이 안들린적이 없었는데....

몇년전부터 들리다 말다한 강론말씀들이 요즘와선 극에 달한 것같은 현상으로 와닿아

강론말씀듣기를 어떤땐 포기해 버릴때도 있을 정도였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십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몸도 늙고 귀도 멀어져가고 ...

시간과 함께 생겨난 자연 노화현상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요즘은 그노무 에어콘소리가 한몫을 더 거들어 장단을 맞춘다.

찌는듯한 더위에 고마운 에어컨에겐 참 미안스럽지만.... 우짜노 소리가 잘 안들려

풍동성당 짜랑한 마이크가 있는 곳으로 가고싶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그것 또한 잘 참아내라시는 주님 수련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참아보려 애 쓰는 요즘이다.


부주임사제의 강론말씀 또한 작고 여린 톤으로 성당을 울리지만 그래도 내용은

마음속에 찡한 울림으로 살아계신 주님의 성체성혈의 보배로운 떨림의 소리를 전해준다.

복자성당을 들어가면 입구에 대형의 십자가앞에 세분의 복자 묘가 보인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 복자 묘 이다.

세분의 복자는 언양 죽령리 공소 지역에 살다가

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가족을 이끌고 경주 단원산 소태골의 범굴에 숨어 살게 된다.

하지만 1868년 경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경주 진영에서 문초를 받은뒤

울산 병영으로 이송되어 울산 장대벌에서 1868년 9월 14일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다.


세분의 유해는 허인백 복자의 부인이 관헌의 눈을 피해 동천강 둑에 가매장하였다가

경주 진목정 도매산에 이장했다고 한다.

그후 대구 감천리 묘지를 거쳐 1973년 병인 순교자 기념 성당인 복자성당으로 모셔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한다.....

복자성당은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순교자 현양 기념성당으로.

성당 건물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귀국할때 타고 온 라파엘호를 형상화 하였다는데

이미 어두워진 관계로 성령충만한 라파엘호의 모습은 보지도 못한채 미사가

끝난 어둠속을 떠나오며 간신히 세분 순교성인께 인사만 하고 떠나올수 밖에 없었다.



                                                                                                (신나무골 성지 주차장 예수성심상)

                                                                                           

오늘도 수고몽땅 한 우리의 4836 거마꾼아 오늘밤 또 편히 쉬어갈 잠자리

찾아 달려가자꾸나~~!! 대구의 심장부를 향하여~ 이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257 5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