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3일 (월)
(녹)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해금강도 옮겨버린 겨자씨한알 믿음~♬순롓길186처(함안대산성당/구한선타대오묘/김해복자빅토리노묘/신석복마르코묘/거제윤봉문요셉성지/순교자의딸유섬이묘/진주정찬문안토니오묘/문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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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8-16 ㅣ No.10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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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0일 주일새벽 5시40분에 모텔방을 빠져나오는데

"팬하게 잘 잤습니꺼? 잘 가입시데이~" 사우나딸린 모텔 여주인장의

난데없는 인삿말에

"아이구~ 참 잘자고 갑니더.. 고맙습니데이~"

3만원짜리 모텔방이 30만원짜리 정으로 넘쳐흐르는 주일의 아침이다.


5분거리에 있는 대산성당을 찾아드니 이른 새벽시간이라 무덤경당은 문이잠겨있다.

성모님앞에 우선 촛불10개 태워올리고, 구한선 타대오순교자 유해의일부가 묻혀있는

야외 제대앞과 그분의 상이 있는 넓다란 잔디밭을 거닐며 순교자의 생을 묵상해본다.

복자 구한선은 함안 미나리골 출신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믿음에 충실했다고 한다.

병인박해 직전에는 리델 신부를 모시고 거제도까지가서 전교활동을 하였고 (리델 신부의 복사)

병인박해 이후에는 진주 인근에서 붙잡혀 관아로 압송되게 되어.

감옥에 갖혀 심한 매질과 혹독한 고문을 당했지만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한다.

 


관장이 "어찌하여 아프다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느냐?" 라고 묻자,

구한선 복자는 "늙으신 어머니가 문밖에 있을터인데 신음소리를 들으면

어머니께서 기절하실 것이므로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라고 답할 만큼 효성이 지극했다한다..

결국에는 심한 매질과 고문으로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집으로 보내졌고

장독(곤장으로 심하게 맞아 생긴 상처의 독)으로 스물셋의 나이에 순교하게 되었다.

 


구한선 순교자의 묘는 1959년에 신씨가문 묘역 귀퉁이에서 처음 발견되었다한다.

이후 교우들은 대산면 신대마을 신씨 묘역에 있는 묘소를 참배하기 시작했고

외교인 묘역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1976년 9월 평림리 가등산에 이장하게 된다.

2014년 8월 구한선 순교자는 시복되었고 묘소 접근성이 떨어져서

2016년 10월부터 대산성당으로 유해를 모시고 성지를 조성하게 되었다한다.

 


조용히 침묵속에 잠든 대산성당을 뒤로하고 처음에 묻혀있었다던 타대오의 묘로

출발해가는 6시21분의 시간이다.

남의 선산 한귀퉁이라 그랬던지 초라하게 방치되어있는 듯한 짠~한 마음이 들어오며

"에구~ 안내문이라도 좀 깔끔하게 붙여놓았으면 좋았을걸 "

수박의 도시 함안땅을 빠져나오는 6시 50분의 아침기온은 24도C 상쾌하기만 하다.

 


7시 36분경 도착한 김해땅...

복자 박대식빅토리노 묘를 찾느라 몇번을 왔던길 가고 또 반복하다

눈밝은 할배의 눈에 딱 걸려 겨우 찾아냈다.


널따란 앞공터에 커다란 포크레인이며 중장비 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었으니

설마 그 뒷 산길로 안내판이 붙여져 있을줄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산길100미터.. 45도 경사진 꼭대기를 오르려니 아침부터 땀이 장난아니다.

박대식 빅토리는 1812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입교한후 가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중 무진박해때 대구와 김해에서 온 포졸들에게

잡혀 조카 박수연과 함께 김해관아로 압송되었다.

 


그곳에서 문초를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고, 대구로 압송되어 감영에서 혹형을 받아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렸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다가 마침내 조카와 모두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한다.

가족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와 선영에 모시려했으나 마을사람들 모두의 반대로

인근의 유씨문중 산에 평장으로 매장했다한다.

 


그후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하고 부인의 묘도 함께 이장해서 모셨다한다.

1966년 진영본당 주임신부의 주선으로 순교자의 무덤앞에 비석을 세웠고 그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임이 밝혀졌다한다.

2014.8.16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하며

진례성당은 매년 후손들과 함께 순교자를 기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신석복마르코 묘지가 있는 진영성당 천주교회묘지를 향해 달려간다.

진영성당 공원묘지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천사들이 반겨주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지그제그로 한처씩 기도하며 갈수있도록 이어져 있고,

그 끝에 순교자 신석복마르코의

묘가 있다. 묘소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숙여 절하며 이분 또한 어떤 연의

세월을 보내셨나 살펴본다.

소금장수 신석복에 대한 글은 밀양 명례성지를 순례하며 공부하였고, 

순교후 그의 유해는 아들 이냐시오가 돈을 가지고 대구로 가서 모셔왔으나

명례지방 유지들의 반대로 선산에 모시지 못하였고 부득이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의 노루목에 안장하였다한다.

 


그후 진영본당에서는 순교자의 묘가 야산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진영본당

공원묘지로 이전하여 오늘까지 이르러 이곳에 잠들어 계신다고 한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댔기 때문인지 아직 9시도 되지않은 시간에

순교자의 딸 유섬이묘를 찾아 또 달려간다.

우선 거제성당서 10시30분 미사를 참례하고 움직여야 할것같아 또 서둘러댄다.


9시4분 부산을 지나간다. 고가도로 양편으로 어마어마한 쿠팡물류센타가

성을 이루고 있는 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다물어 지지않는다.

 

신항만 바닥에 깔려있는 콘테이너박스들 또한 성냥갑마냥 산더미를

이루고 있고 .... 모든것이 크고, 높고,, 많고.,, 온세상의 바벨탑이

다 모여있는 것같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속 경이로움?..속에서 약간의

설렘조차 가져짐은 무슨 해괴한 징조?인고...!!

 


해저깊이 34미터의 물속길을 가로지르고 41미터~ 26미터 수심속을 쭉쭉 뻗어

지나는 스릴있는 이길은 생전 처음보고 달려가는 무슨 해저터널인가보다? ...

중죽도 터널로 빠져나왔을 때에야 휴우~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깊은 수심을 가르고 겁도없이 달려가는 이 많은 차들의 심장은

철판을 깔은 쇠심장이 분명 맞을거라는 생각과 함께...

제주행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의 초긴장속 침넘기는 소리가 오버랩되어오더라.

 


금방 또 나타나는 기똥찬 바위 나무섬은 또 무엇인고?... 그림같은 풍경속에

홀로 유유자작 쪽배하나~~!! 서얼마... 해.금.강 이라니?..!!


전라도 서해안 바닷가 기억속의 해금강이 40년을 훨씬돌아 거제도로 이사왔나?

 

스무살 부산촌년들이 해금강 귀경간다고 하양색 돌핀호타고 타고 날랐던게

엊그제 같은데.... 


당연히 오늘까지 알고 있었던 서해안의 해금강을 겨자씨 믿음

하나로 남해안 거제앞바다로 옮겨놓은 믿음의 사람 그 누,굴 ,까~~!^^

 


어? 이건 또 뭐지? 인천공항 다리 조형물 저리가라 ... 어마어마한 기절초풍의

이 다리는 거제도와 육지를 잇는 새로생긴 다리?인가 보다. 이름하여 거가대교..


몇개의 다리와 터널들을 지나고 또 지나와 도착한 거제땅의 성지엔

해금강과 쪽빛바다 거제라는 광고판이 마음을 씨원하게 해주며 온갖 스트레스들을

날려 주누나~

.

마음과 영혼까지 쪽빛물에 잔뜩 씻겨 내려간듯한 이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과 투명의 맑음이다.


역시.. 어릴적부터 보며 살아온 바다는 요동치던 내 마음을 쓸어내려준다.

한껏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우선 거제성당 미사시간을 여유로이 찾는다.

10시05분.... !! 갑자기 자동차 바퀴에 바람이 빠지고 있는 돌발상황 발생!


혼비백산하여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녀봐도 카센타 정비공장이 없다.

"아이고 아부지~ 우짜라꼬 이 카십니꺼?"... ㅠㅠㅠ


다급한 김에 애니카에 연락을 넣어본다. 이리도 멀리까지 와줄까 조마조마해하며.

 

다행히 15분후에 도착한다는 착한천사 기사님을 기다리며 할배는 나더러

먼저 미사를 하라며 .... 애니카 천사님을 기다린다.


입당성가를 끝내고 신부님의 시작기도와 함께 들어온 할배를 맞으며 온갖 우여곡절을

겪게하면서도 앞길을 인도해주시는 성령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리며 미사를 봉헌한다.

 

착한 사마리아 이웃의 정의를 또렷한 목소리로 잘 알아들을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주임사제의 강론에 감사드리고 나오며 고개숙여 인사로 답례한다.

11시49분 전주교구 유항검의 딸 9살 유섬이처자의 묘를 향해 달려간다.

3살 6살 9살의 아들딸은 참형을 못시키는 대신에 노비의신분으로 여러섬에

유배를 보냈다는 그 시절의 처형제도를 떠올려본다.


전라도 온땅이 유항검 순교자의 땅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부자양반이

처 자식들 모두 순교의 칼을 받게하고 세상속 모든것들을 포기한채 하늘나라 오르

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교자의 신앙앞에 인간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 사람 미친사람 아니야?.." 라고 하는 리노할배가 낭패스럽기도 한데도.

생각만 해도 그 어린것들의 앞날이 억장이 무너질 아픔으로 기가 찰정도인데...

아비가 되어 그럴수 있었다는게 믿기어려울 정도이라 한마디 뱉었으리라 ..^^


당황한 기색으로 도로 줏어담으며

"기가 막힌 훌륭한 신앙인이라"며 신성과 인성의 오락가락 열차속에서 뒤뚱거리는

리노할배의 말에 백프로 동감한다.

 


아홉살짜리 여자아이가 나이많은 동네할머니의 수양딸로 들어가 평생을

동정으로 꿋꿋하게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신앙으로 살다 하느님곁으로

떠나간 유섬이를 위해 그마을 군수가 유처자의 묘를 마련해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날나리같은 내 신앙에 빨강불이 켜지지않기를 기도한다.

 


당대 갑부의 여식의 무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고 소박한

묘앞에서 세상사 무상함이 새로이 깨달아진다.

내려오는 길목.. 대구서 왔다는 젊은 부부와 인사하고 다음 성지인

윤봉문 요셉성지를 향해 출발한다.

12시54분에 도착한 산언덕 땅.. 라이락 향기 풀풀날리는 로사리오

스무단의 기도길을 만나 미니기도로 성모님 팔 꽉껴안고 서둘러 인사드리고...

경당안 예수님께 주모경으로 또 인사드린다.

시원스레 울창한 대나무 숲길 가파른 산길로 이어진 십자가의 길을

오늘은 길을 잘못들어 거꾸로 하고 내려온다.

다니다 보니 별스런 기도길도 밟아 보는게 이상키도 하지만서도...

안하고 내려오는것 보담 덜 미안스러울 것같아 시계바늘을 뒤로 돌린다.  


복자 윤봉문 요셉의 가족이 거제도에 정착한 것은 1868년경이다.

병인박해 중에 윤사우 스타니슬라오가 양산 ‘대처’를 거쳐 이곳 진목성에 와

전교 활동을 폄으로써 활발하게 포교 활동이 이루어진다.


윤봉문은 윤사우의 둘째 아들로 거제의 사도로서 형 경문과 함께 교회 회장직을 맡아

신자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쓰는 한편 자신의 수계에도 열심이었다.

 

1888년 2월 7일(음) 옥포에서 체포된 윤봉문은 거제 부사 박병용의 호출을 받고

거제 관아로 끌려가 태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포졸들은 배교시키려고 심한 문초와

고문을 가했지만 순교자는 믿음으로 견디다 진주로 옮겨져 교살당해 순교하였다.

당시 나이 37세였다.


순교자의 가족으로는 부인 진 펠리치타스와 아들 학송 루카( 7세), 딸 송악 카타리나(2세)가 있었다.

순교자의 유해는 진주 장재리 공소의 교우들이 거두어 공소 뒷산에 가매장하였다.

그 후 10년 뒤 1898년경 당시 옥포 본당 복사로 있던 성바오로가 순교자의 유해를 거제도로 모셔 왔고

옥포 족박골에 안장하였다가 2013년 4월 20일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세개의 십자가가 새겨진 순교자 현양비와 함께 이제는 평화로이 누워계신

선조께 고개숙여 절하고 또 다음길을 떠난다.

로사리오의 기나긴 기도길과 가파른 십자가의 길이 산 한개를 다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하루길은 족히 되는 순례의 장소라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 안고 기약없는 이별을 하고 돌아온다.

 


정찬문 안토니오 묘가 있는 진주시 사봉면 사봉공소가 있는 성지는

머리가 없이 유해가 묻혔다해서 무두묘라고 불리워 지고 있다한다.

 


정찬문은 허유 고개 중촌에서 1822년 진양 정씨 가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대산 가등 공소의 천주교 신자 집안의 칠원 윤씨와 혼인하여 아들 중순을 낳았다.

부인의 권면으로 41세에 입교하여 성가정을 이루며 전교 활동에 충실했다 한다.

 


병인박해가 일어나 정찬문도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옥에 갇혀있으면서

온갖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지만 굳건히 신앙을 지켰다.한다.

그의 가산은 적몰되고 가족들은 생활이 어렵게 되었지만 부인 윤씨는 어린것을

등에 없고 밥을 빌어 옥으로 나르며 남편을 격려했다.

모진 매를 맞고 옥으로 끌려들어간 그날밤 45세로 숨을 거두었다는 순교자의 이야기다.


날은 푹푹찌고 다리는 무거워져서 얼음물만 간절한 생각으로 찾아가는 십자가길 또한

만만찮아 꾀를 부리고 싶은데.... 결국은 돌아돌아 곱절로 제 십자가 찾아가는 길이 되어버려

성령의 엄한 나무람 앞에 뻘쭘한 표정의 제탓이오! 미안스런 웃음 지어본다.


산 등성이 꼭대기에 돌무더기 가운데 서 계신 성모님의 자태가 여엉~ 아니라고

못마땅해하는 리노할배는 조신하고 우아한 어머니의 상과는 어울리지않는다며

얼른 내려가잔다. "아니~ 그래도 사진이라도 남겨야지..."


풀은 수북수북하고 .... 공소의 문은 꽉 잠겨있고.... 뼈만 앙상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하며..

어째 전체가 어지러운 사차원의 세계에라도 온것같은 이 기분은 리노할매만 느끼는 감정인가?...?


내려오는 골목길 온동네가 온통 재미있는 벽화로 도배가 되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개한마리가 술에취해 고주망태가 된 주인옆에서 남은 술을 핥느라 여념이 없는

그림들 구경하며 박장대소 배꼽잡는 웃음을 날려본다. 아~~하아하~ 깔깔!!


석류의 고장 진주를 달려가는 4시47분에 가까이있는 문산성당을 두드린다.

넓고 크고 정갈한 나무들이 즐비하게 잘 정돈된 성당 마당을 들어서며

????.... 부엌도 정갈하고.... 조경도 아주 근사하게 잘되어있는 이 아름다운

성전의 우리주님은 행복하시겠건만....


저어기~ 사봉공소의 예수님은 뼈만 앙상히 매달려 계시고.... 잡초는 무성하고...

방명록 또한 새로 좀 갈아달라 아우성이더니...

그여코.... 지나가는 봉사자께 한마디 붙들어 세우고야 말며

"저어기~ 사봉공소는 관리가 도무지 안되는 것같아요.... 여기는 이리도

깔끔한데.... "


나름대로 사정들이야 다 있겠지만서도.... 스템프 찍기가 죄송스럴 만큼...

그래도 우짜노....


가는데 마다 우리 주님 십자가의 길은 어김없이 기다리시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성모님의 가슴에 함께 묻으며 도와주시라고 기도드려본다. 


문산성당을 빠져나와 집으로의 키를 누르며 곧 밀려올 어둠속 고속도로를

달려갈 할배곁에서 산아래 첫집까지 도착하도록 마지막 시간까지 깨어 있어야 겠다.


졸음과 어둠속 복병들의 방해를 뚫고 가도록.....

함께 달려보자 ~! 8436 검정 파발마야~!


일박이일의 마산교구의 모든 순례길도 주인님의 도우심으로 끝을 맺었다...

7시 24분 어둠이 내려앉는 청주땅을 스쳐가며 지난 이틀간의 감사한 삶의

시간을 내려놓는다.


오늘도 감사한 성령님~ 성모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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