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목)
(녹)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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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절받으이소♬~순례길194처(언양성당/죽림굴/살티공소/김영제,김아가다묘)197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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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8-25 ㅣ No.10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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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0일 토요일 오전 4시30분 출발하는 오늘.내일의 순례길은

작년 3월부터 시작한 조선팔도의 모든 순교성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뜻깊고 감사한 은총의 길이다.


2중부 고속도로를 내닫는 길 또한 이른 새벽길이라 방해되는 차 하나없이

씽씽 달려간다. 여느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어젯밤도 2-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참치/치즈/홍두께살이 포함된 11가지의 동지들로 뭉쳐진 영양김밥을 싸고

야채, 과일들을 준비하여 비상약들이며, 이것저것들 챙기느라 부산을 떨다

보며 어느새 2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와중에도 결코 빼놓을수 없는 한시간 가까운 기도의 시간은 먼길 떠나는

우리에게 필수불가결의 영혼의 양식이라 아버지 어머니. 아드님...

성령님 다 불러가며 도움청하는 내 믿음의 보루이다.^^


차에 오르며 얼마전부터 인격을 부여한 우리 파발마의 유리창을 두드려대며

"오늘도 수고좀 해달라"고 이번길이 마지막 밋션길이라고 한껏 응원하며 출발을

서두르며 달려가는 길이다..


길위에서 나누는 오늘의 대화엔 44년전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김윤근 베드로

신부님의 안부와 어느땅 어느곳에서 조용한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는..

교구소식란에서 주워들은 소식에서 이제는 은퇴하셨다는 소식만 알고있는

리노할배의 그리움 같은 사제이신데...ㅠㅠ


지금 찾아가는 언양땅이란 곳은 아련히 피어오르는 향수같은 그리움이 있다.

44년전 용두산 공원아래 부산 주교좌성당에서 새사제로 부임하신 신부님으로부터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첫번째의 테이프를 끊으며

혼배를 올렸던 가난한 신랑.신부는 그후로 삶의 광야에 내쫓긴채 갖은 고생으로

40년세월을 혹독하게 살아내었던 황량하고 두려웠던 삶의 길.. 끝에 와서야

우리 부부의 삶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주신 사제의 기억을 끄집어 낸다.


작년부터 뜬금없이 한번씩 "김윤근 베드로신부님을 죽기전에 꼭 한번 만나

절이라도 하고싶다"던 남편의 말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이루어야 할 소명인냥 다가와

아이들한테도 "아부지가 죽기전에 너네들 가족들 모두 데리고 신부님 만나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더라..." 한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왔나 ... 에구 마음이 찡~하네"

'저 양반이 한생을 살아오는 동안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처음의 사제에 대한 감사함이 참으로 차고 넘치는 구나' .... 마땅하고 옳은 생각을

나는 왜 거기까진 생각치 못했을까? 이제서야 깨달았네....!


"반석아부지!~ 오늘 가는 언양성당 이 참 예사롭지 않은게.... 그때 왜 그 신부님이 맨날

"언양 촌*이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자랑비스무리 말하곤 하셨는데... 언양성당가믄

소식이라도 알수있을 려나요?"....


나라돌아가는 이야기며... 술렁대는 성당 이야기며... 반석이. 데레사. 미카엘이놈

이야기를 나누며 달려오는 동안 졸음의 시간도 없이 9시 08분 도착한 언양성당 이다.

언양읍 구교동 1길엔 순교 선열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소의 온상지이며

순교자 후손들의 본거지가 있었던 언양성당의 요람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상도 남부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815년 을해박해

이후로 추정되고 있으며, 언양 지역은 그보다 훨씬 더 늦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지역에는 경남 최초의 공소인 내간월 불당골 공소가 있었는데, 불당골은

김재권(프란치스코)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온 뒤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던 곳이다.


불당골은 선교사들을 맞이할 무렵 공소로 변모하였으며, 최양업(토마스) 신부와

다블뤼주교가 방문하여 차례로 공소를 치르던 1850년대 말에는 언양 일대가

신자들의 집단 거주 지역으로 변모되어 간월, 죽림(대재, 죽령, 죽림골), 탑곡,

예씨네골, 진목정 등지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한다.

언양 지역의 교우촌들은 병인박해 때 심한 타격을 입었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이 지역 최초의 순교자는 김사집(필립보)으로, 그는 1866년 11월 진영 포졸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5월에 순교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23세였다.

이어 언양 대재 교우촌에 살던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카), 이양등(베드로) 등 3명이

1868년 9월 14일에 체포되어 울산장대에서 순교하였다.는 성지의 역사를 배운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제일먼저 예수님 계신 감실앞에 꿇어 앉아 성모님 도움의

묵주한단을 바친다음 밖으로 나와 십사처를 찾아간다.

십자가길 오르는 입구에 백지사형으로 순교한 오상선 순교자의 묘가 나타난다.

물적신 백지를 덮어 숨이 막혀 죽게하는 끔찍스런 인간의 잔인함에 몸서리치며

잠깐 고개숙여 그분의 높고 굳은 신앙에 인사드리고 시작되는 어머니께 청하는

주님의 고통의 길을 가슴에 새기며 사형선고 받으시던 현장에 도착한다.


빌라도앞을 지나고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며 기진한 주님과 함께 넘어지며

내 지나온 삶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함께 아파하며 걸어가는 오늘 이길이 새롭다.

제법 경사진 오름세의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리노할배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멈추어 서길레 심장이 덜컹.. 그늘진 나무아래 주저앉아 쉬어간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 새겨주시라고~ 또 걸음을 옮겨

놓아가며 할배가 머리아픔으로 부터 놓여나기를 바라며 성모님 팔 더 세게

움겨잡고 오른다.

산꼭대기 끝자락 커다란 동굴속 깨끗한 약수가 졸졸거리는 옴팡한 곳에  

루르드의 성모님은 아니면서도. 시원하고 맑은 약수한 바가지 벌컥 벌컬

들이키고 나서야 할배는 갑자기 띵하게 얻어맞은 머리아픔으로 부터 놓여나는 가 보다.

나 도 땀과 더위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다.

지구의 저쪽 편에 계신 루르드의 샘물을 옮겨놓기라도 한듯한 언양성당

동굴속 성모님곁 약수 한바가지의 치유은사에 감사드려본다.


성모님앞에 앉아 땀을 식히며 꽃향기 속 기도구슬 함께 바치고

비지땀 오르던 산길을 또 내려간다.

성당 사무실에 들러 죽림골 방향을 여쭤보고 나오는데 사무장께서

혼자 오신 여자 순례자께서 무서워서 누구 같이 갈사람을 찾는다고 의향을 물어오길레

빠듯한 일정을 염두에 두곤 죄송하다며 돌아서 나오면서도 그냥 좀 찝찝한 기분이다.


뒤따라오는 할배를 채근하며 어서 출발하자고 차에 오르는 순간

"아뿔사! 아까 성당 조배하러 다녀 나오다 모자를 성전에 두고 왔는데 지금은 미사가

끝자락에 이어지고 있으니...할수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미사가 끝날때 까지..


사무장께 전화를 해서 모자를 찾아가야해서 미사후 출발해야 하니 그 자매께 연락해

함께 가도 되겠다고 하고 나서야 찝찝한 구름으로 부터 해방되었다.^^

"참~ 우리 성령님 또 요런 방법으로 우리 발을 묶어 ' 함께가야지~' 타이르신다."


모자를 찾아 나오는 사무장께 고맙다며 인사하고 나오다 놓치지않는 할배의

오매불망 알고싶던 옛사제의 소식 궁금증을 씨원하게 풀어주던 얼굴도 예쁘장하고

선하게 생겼던 젊은 여자사무장께서~

"김윤근 베드로신부님 살티공소 옆에 고향집을 새로지어 거기서 은퇴후의 조용한

삶을 살고 계세요.."


"옴.마.야. 세. 상. 에....! 반석아부지~ 이기 또 무신 일인기요? 참말인거 맞제요?..

아이고~ 사무장님 너무너무 고맙습니데이~~ 복받을 낍니더.. 참말로

고맙슴니더~이 신부님 진짜로 거게서 살고 계시지예?"


도저히 믿을수없는 기적같은 소식앞에...

고맙다는 절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하다 못해 알뜰살뜰히 싸안고 온 영양김밥

한 줄까지 덥석 내어드리며 오늘 이시간 이 기적의 순간을 길잡이 성령님께

마음깊이 또 감사를 드린다. "아이구 이상스런 성령님 와이리 놀래케 합니꺼?~"


두근두근.....!! 서른의 에리에리한 신부님의 환하게 웃던 얼굴이며

가난한 우리부부에게 조촐한 밥한끼 내어주시며 안스러하던 김해성당에서의

마지막 만남 이후 모든것 버리고 바께스 두개만 양팔에 안고 올랐던 상경길후

40 여년을 돌아돌아 모진광야길 걸어와 만나게 될줄을... 오늘 이시간 은

결코 우연이 아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안겨주신 축복의 마침표~! 시간이리라~


그래도 ... 절대로 서두르지 말지어다. 오늘의 마지막 살티공소의 순례를 마친다음

그 옆에 살고계시 다는 신부님을 만나뵈러 가야할테다... 마음도 좀 진정시켜가며..

죽림굴 오르는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젊은 자매를 찾아 간월산 대재공소를

찾아 달려간다.

11시05분에 출발하는 죽림굴 오르는 길은 걸어서 왕복순례길이 3시간은

걸린다며 오르는 모든이로 하여금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망설임까지

생기게 하더라....

게다가 날씨또한 심상찮은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같은 포기하고픈 유혹길..

아니야~! 난이도의 행진일지라도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 ..... 마음굳게 먹으며

가방안에 우의세벌. 우산. 물 두병까지 챙겨짊어지고 비장한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참! 오늘 우리와 함께 가는 이 젊은 자매의 이름은 남미숙(모니카). 우리 관산동 성당

바로 이웃사촌 신원동성당의 패기와 용기로 똘똘 뭉쳐진 믿음의 사도? 이다.

이 자매 역시도 남편 자녀 모두 집에 남겨두고. 혼자서 지난 일여년을 전국 곳곳

성지찾아 순례하고 있다는 보기드문 ... 처자! 굳세어라 모니카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이 산길은 분명히 차로도 충분히 갈수있는 길인데도 기어코 걸어가게

하고야 마는 이유가 분명 있을 진대.....

30여분 올라가는 길에 저만치 한무리 야생의 들개 무리들이 겁도없이 우리와 마주오고있다.

꼬리도 말지않고 당당히 지나가는 5마리 각각의 종들을 보며 짜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누군가 사.람.들...이 감당치 못해 버리고 간 놈들일테다. 혼자라면 절대로 이 깊은 산골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텐데... 여럿이 모여 한무리의 공동체로 살아가기에 저리도 건강하고

당당하리라.... 자신을 버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기 라도 한듯이...에구~ 불쌍한 것들

참 미안타! 사람들이 참 부끄럽다.

그옛날 이산길 신앙의 선조들도 함께였기에 칼도, 창도 모진고문도 견뎌낼수

있었으리라... 지금 저토록 두려움없는 길 위 들개무리들 닮은 일치와

신뢰와 사랑의 갑옷무장처럼....


길고긴 산길을 오르는 동안 몇무리의 사람들과 또 만난다.

대전에서 순례왔다는 대건안드레아님...용인서 왔다는

이름모를 자매 2사람... 노원구에서 왔다는 노부부는 세번만에 오늘 드디어

오르고야 말았다며 환호한다.

전국을 다니는 동안 꽤많은 순례길 동무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하느님안에

우리모두 한 형제 자매란 믿음속 깨달음을 배우고... 신앙을 키워간다.


행여라도~~ 비가오던지... 끝없는 길이 이어지던지... 우리가 감당할 세시간의

길위에서 생면부지의 모니카에게 딸같은 정도 묻어나고... 뒤따라 오르는

리노할배의 허리안부를 챙겨가며 긴 길위에 우리도 하나가 된다.

잔뜩 흐린 하늘은 여전히 고맙기만 하고,,, 시원스레 불어대는 바람또한

요나의 시원한 그늘도 부럽지않게 해주누만...^^


먼저 다녀 내려오는 형제가 너무 멀고 힘드니까 안가는게 좋겠다며

농담반 진담반의 소리를 던진다.

"죽림골 스템프 내가 몇장 찍어 왔으니까 한장 줄수도 있어요"ㅋㅋ

돌고돌아....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어느새 저만치 끝이 보인다.

커다란 돌더미 바위 하나.가 그옛날 박해시대때의 공소였다니...

이름하여 대재공소... 환호하며 기어올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감격한다. 다 이루었도다!


죽림굴(대재공소)은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의 공소로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공소에 이어 두번째 공소라고 한다.

샤스탕 정신부와 다블뤼 안신부가 20여년간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때는

박해를 피애 들어온 최양업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최신부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이곳에서

썼다고 한다. 그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등 3명의 순교자가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동정순교자 김아가타도 최신부를 도우며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계속되는 박해의 여파로 교우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명을 넘기던 신자들이

사방각지로 흩어져 대재 공소는 패쇄되었다 한다.

1986년 11월 9일 언양성당 신부와 신자들이 죽림굴을 발견하고 현재는 매년 발견

기념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이굴은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한다.


정말로 굴 입구에 올라가 불빛으로 비춰보니 굴 저 안쪽은 컴컴한데도 넓따란 것이

천연의 요새로 딱 맞춤이었기에 숨어서 그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수 있는 공소자리였던 것이다.

세 시간여의 순례 등산길을 마치고 내려온 2시 반에 신원동 모니카와 작별을 하며

김밥하나 두유한팩을 나누어 주고. 남은길 조심하고 우리동네서 다시 만나자며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오늘의 크라이막스 살티성지를 향해 달려간다.


경상 북도 청도군, 경상 남도 밀양군·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30미터)의

중턱에 위치한 살티는 원래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이라는 뜻과

박해를 피해와 살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살티, 살틔, 살터, 시현 등으로 표기되어 왔다한다.

그러다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간월과 언양 지방에 살던 신자들이 안살티로

피난을 와서 살기 시작했다.


살티 공소 인근의 간월골에는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큰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신자수도 늘고 성전도 신축됐다. 하지만 1860년 경신박해,

1866년 병인박해로 성전은 불타 버렸고 교우촌은 폐허가 됐다.

이 때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간월골의 몇몇 교우들은 깊은 산 속으로 피해야 했고

새로운 은신처로서 나무가 울창하고 맹수들이 득실대던 이곳 살티에 숨어들었다.


살티성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김영제(베드로)는 병인박해 시절에 순교자로 양반 신분이었다.

그는 박해를 피해 이곳 살티로 들어온 후 최양업 신부님과 다뷜뤼 신부님을 도와 전교 활동에 힘썼다.

하지만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이때 김영제(베드로)는 김종륜(루가), 이양등(베드로), 허인백(야고보)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로 압송됐다. 그후 김영제를 제외한 세 사람은 울산 장대벌에서 치명하고 김영제는

다시 서울로 이송되어 9개월동안 무수한 매를 맞고 고종의 혼인일을 기해 석방된다.


하지만 그는 숱한 고문으로 반주검이 되어 살티로 돌아온 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1875년 숨을 거둔다. 온몸에 장독이 퍼져 더 이상 살 수가 없게되었지만

김영제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양반으로 태어나 보장된 삶을 뒤로하고

신앙의 길을 택한 김영제는 '장하순교'라는 거룩한 월계관을 쓰고 예수님곁으로 돌아간다.

'장하순교'란 장독으로 순교하는 것을 말하는 거룩한 순교라 한다.


병인박해를 피해 살티공소로 피난해온 교우들의 피와 땀과 신앙이 배여 있는 살티공소는

주변 교우들의 안식터로 자리를 잡고 있다. 김영제(베드로)같이 위대한 순교자를 배출한

이곳 공소가 당시에는 박해의 칼날을 피해 살기위해 숨어 들었던 곳이라는 것이 어쩌면

정해진 당신의 뜻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첩첩산중 낮에도 찾기가 힘들었던 살티공소에서

돌아가신 순교자들의 향기가 나는 것은 아직도 이곳에 신앙의 후손들이 남아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손들에 의해 순교 성인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살티는 최재선 주교, 김문옥 신부,

이종창신부, 김윤근 신부 등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聖召)의 고장으로 자라났다한다.


좁은 골목길에 작은 공소건물이 몇안되는 시골마을 이웃사람들의 사랑방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내음을 맡으려

숨을 크게 들이마셔본다. 전국을 돌아돌아 이 조용하고 작은 마을속 공소까지

불러앉혀 당신께 경배드리게 하신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아멘!

신비의 일단으로 주님을 알현하고 순교자 두분의 묘가 있는 성지를 찾아 나선다.

순교자 김영제 베드로와 누이동생 동정녀 김아가타의 묘가 공소 가까이 잠들어계신다.

그분들의 삶의 시간들을 함께 묵상하며 주위로 돌아가며 이어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

어머니를 만나뵙고... 피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며 통곡하던

베로니카를 만나가며 그날의 동정녀 아가타님을 떠올린다.


죽림굴 동굴에서 최양업 신부님이 지어주신 짚신들을 짊어지고 먼산길을

오르내려 가며 마을장터에 내다 팔아 근근이 목숨을 연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간신히 버텨내다가 열병으로 결국 하느님 곁으로 갔다는

고통과 승리의 삶의 이야기는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네가 결코 실감할수 없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으리라..... !! 하느님 때문에... 겪고 치뤄내야 했던

어마어마한 은총의 십자가가 나는 오늘 온몸이 떨리도록 두려웁다...


두분의 묘옆으로 순교자 후손들의 묘가 나란히 잠들어 두분의 공로에

천국열차 함께 얻어 타고 하늘 오르시는듯.... 평화롭다.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 드디어.... 우리 신부님을 만나러 가보자.

저만치 새로 단장한 듯한 깔끔한 집한채가 높은 성곽위에 있는듯 평화롭다.

문을 두드리자 우리를 맞이하는 중년이 좀 안되어 보이는 여인의 얼굴속에

우리 신부님의 얼굴이 보인다. "아마도 신부님 동생분이라도 되나보다"


두근두근한 가슴을 안고 들어간 집안엔 커다란 십자고상의 우리 주님이

여느 성지의 고상처럼 우리를 반긴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신부님! 우리를 보고 아리까리한 표정을 지으신다.

누.구.? 어디서 봤더라?... 의


야리야리하고 장난끼 넘치던 젊은 날의 신부님 얼굴은 이제 노사제의

넉넉함 속에 묻혀져가 보이지 않는다....

칠순이 넘은 사제의 얼굴엔 비움의 평화만이 남아 머물고 있다.


"신.부.님! 저희 아오스딩과 아녜스가 이제사 신부님께 엎드려 절하려

찾아왔습니다. "

"어엉~! 맞아 맞아.... 아오스딩... 아녜스...맞다 이런 일이..."

젊은날의 시간속 신부와 젊은날의 부부가.... 40년 황혼의 고개를 넘어서야

서로 만나 이산가족 상봉같은 애틋한 그리움들을 이제서야 나눈다.


감격의 떨리움으로 부둥켜 안는 우리의 가슴가득 신.망.애 향주삼덕의

고향열차 함박웃음 머금고 달려오리라~~ 오소서! 성령님~

땅바닥에 엎드려 길고긴 큰절을 올리는 우리부부..

이제 흰머리 풀풀날리는 황혼의 노부부로 함께 늙어가는 사제앞에 엎드려

돌아온 탕자?같은 회한으로 감격한다.


역시 신부님 동생분이 내어주는 산소방울 주스한잔 마시며 나누는 지난세월

속에는 물위의 다리가 되어(수교회)란 젊었을때의 단체속 사람들의 안부를

나누어 가며 애틋하고 행복하다.

기억속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헤어져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우리도 그중의 한명이었을 테니까...


"신부님. 이제 한가한 시간만 남아있네요... 좀 적적도 하실것 같아요"

"아니~ 마지막 사목중인 성당에서 우연찮게 인연이 되어 돕게된 라오스

때문에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

 

동남 아시아지역 중의 하나인 라오스는 미얀마와 태국이 인접한 작은 나라로

불교국가이며 2만-5만명의 천주교인이 살고 있는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이며

사제와 성소자 모두 합해 서른명이 넘을 정도의 취약한 곳인데 그옛날 우리가

공부하던 시절처럼 그나라 또한 사제양성의 교육 환경조차 너무나 열악하고

부족하며, 변변찮은 기숙사 하나없이 동가숙서가식?의 고생스러움을 견디어 내고

있는 하느님바라기 젊은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시라고 간절히 청해온

그땅의 주교님의 부탁에..

 

이 또한 하느님 노사제에게 주신 마지막 소명이라 받들어 순명하며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다시는 말을 들어가는데...

띵*~ 하게 머리를 스쳐가는 한 깨달음..이 온다.


"오~! 마이갓! 이 기적같은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닌 우리 하느님

이끄시는 우리부부 삶의 마지막 끝을 부활의 찬란함으로 마감해주시려는

은총의 시간이었구나 .~"


베드로,. 데레사가 부모의 바람대로 음악하는 사제, 음악하는 수도자가

되겠다고해서 등골이 빠지도록 십수년을 올인해가며 국내외 음악공부를

시켜대었는데

어느날..

미카엘라와 마태오를 끌고와선 혼배해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고싶다고 하는데야!

우리부부의 한평생 신앙의 숙원들이 물거품 되어버리고 말은 사건이 늘 마음에

죄송함으로 앉아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눔의 삶을 조금씩 알뜰히 하고 있었지만서도..


내 자식을 대신하여,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가꾸어주고 보듬어 줄 사제들의

탄생을 위해 우리 힘이 필요하시다고 깨달음을 주시고, 가슴속 회색 구름

기워갚아드릴 보속의 기회까지 주시기위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신 성령께선 찬미받으소서...!!


저 아래 차앞까지 배웅해주며 이 만남의 기적이 믿기지않는듯

손을 잡고 또 잡고 믿음속 사랑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 세사람의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도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사제의 뜨거운 강복을 머리에 얹고 돌아오는 기약없는 이별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아쉽지 않음을 안다. 훈훈한 성령안에 늘 함께 하고 있음을 믿기에...


"반석 아부지~ 우리 아부지는 살아갈수록 우리한테 고마운 분이네요.

200 군데가 넘는 성지순례길의 마지막 날에 이렇게 찬란한 마지막 밋션을 주시며

우리를 감동케 하시다니...

하늘나라 팬션 한채 지어내어 영원토록 살고지고...해야겠네요,"


"반석 아부지~ 김영제 베드로 순교자님이 신부님 6대 선조라고 하는것 보면

결코 개천에 용난게 아니네요... 뿌리에 감긴 신앙의 피는 절대로

기냥 만들어지는 거는 아니라요.. 콩심은데는 참말로 콩이 나구만요^^."


한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 썩어야 엄청나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 말씀 새겨 간직하며 하루남은 내일의 순례길의 잠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달려간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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