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조상님들 산소를 찾는 이 많지요
반면 자식들 직장 잡고 일하는 도시로 부모가 이 기간에 찾아
가기도 하구요
불연듯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당시 부모님 밑에서 생활하던
모습이 동영상처럼 떠오른답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요즘들어 생각이 나지요
너무도 가난해서 부모님을 원망할때도 많았답니다
왜냐구요
아버님은 머리도 좋고 특히 일본에 가셔서 경리 업무를 다년간 공부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당시 일반 기업체들은 규모가 적어서 경리 부서가 없을 정도 였다고
하지요
그래서 규모가 큰 경찰서에 취업해서 경리 업무를 수행했었는데 인기가
대단했었다고 했답니다
재고 파악이나 또는 입 출고 사항을 계정과목 분리도 하지 않고 주먹구구
식으로 하던때 였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경리 업무를 아마도 정식으로 하셨다고 했지요
그래서 인기가 대단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좋았었는데 6.25 전쟁이 끝난 이후 사업을 시작하셨지요
훈련소에 부식 납품을 주도 했었는데 여름에 장마통에 부식이 상해서 큰
손해를 봤지요
그로 인해서 빛을 지게 되는 불운을 맞게 됐지요
집 팔고 논 팔고 산 하나 있는 재산 모두를 팔아서 갑게 됐다고 합니다
조금 남은 돈으로 작은 집하나 마련했고 아버님은 서울로 전 직장에서
절친했던 친구를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할머니와 동생들은 시골 집에 있고 어머님과 본인은 아버님이 계신 서울로
와 머물기 시작했답니다
평생을 아버님은 직장을 잡지 못하셨지요
고급 인력이어서 마땅한 직장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초등학교 졸업후 한 1년 쉬고 야간 중학교를 가는둥 생활이 대단히
어려웠음을 느껴야 했지요
절친한 친구에게 구궐하다시피 해가며 생활비를 근근히 조달됐지요
불만이 무척 많았지요
어렵살이 세월은 흘러 공업고등학교를 택했고 졸업후 공장에 나가 일하면서
집안 생활비를 댔지요
너무도 가난했기에 생각조차 싫답니다
추석을 맞이해서 늘 인자하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머님 돌아가신지 10여년이 훨씬 지났지요
어머님이 담그신 김치는 정말 맛있었지요
여름에 햇 배추를 사다가 걷절이를 하셨는데 너무도 맛있어서 두사발을 먹고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제를 먹던 생각이 남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머님 얼굴은 그야말로 잘생겼지요
이쁜 여자 얼굴이었지요
다른 부모와 달리 어머님은 이래라 저래라 간섭 안하시고 하고싶은것 해보고
잘못 됐다고 생각되면 하지 말아라 하시던 신시대 어머님 이었답니다
잔소리를 안하시고 늘 궁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셨지요
다른 친구들은 잘못했을때 어머니 한테 매도 많이 맞았다고 하던데 한번도
혼난적이 없었답니다
잘못했어도 잘못하려 해도 강재로 제어하지 않으셨지요
인자하시고 늘 궁정적 사고를 심어주신 어머님이 오늘따라 무척 그립습니다
이제 70중반이 지났으니 머지않아 어머님이 계신곳에 가 뵈울수있지
않을까?
이뻤던 그 어머님을 업고 어디든 구경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오늘 밤에 꿈에 어머님을 한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와 딸애와 외손녀와 외손자가 있어도 때로는 불연듯 자상하신 어머님이
이렇게 몹시도 뵙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추석날 시골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무척이나 기분
좋지요
차가 밀려도 아무리 멀어도 어머님이 계신곳 찾아가고 싶답니다
산소가 아니고 하늘나라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젊은 시절엔 없던 향수가 황혼길에 접어들어서 생겨났습니다
누구나 이런 향수는 지니고 있겠지요
그리움을 갖게해 주는 명절, 무척 좋은 날이라고 여겨진답니다
(작성: 2022. 09.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