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8일 (월)
(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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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님_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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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11-14 ㅣ No.177592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살자>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 나라 천국이옵니다.”

 

자주 즐겨 외는 자작 애송이 행복기도 한 대목입니다. 요즘 만추의 단풍으로 아름답게 타오르는 대한민국은 어디나 하느님 나라 천국같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 때 마다 바라보는 불암산을 바라보며 외우는 자작 짧은 애송시가 기도의 계절, 10월, 11월 계속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아무리 나눠도 계속 나누고 싶은 또 하나의 시입니다.

 

“늘

 앞에 있는 산

 

 앞에 있는 당신

 

 행복에 삽니다.”

 

옛 어른의 오늘 말씀도 공감이 갑니다. 이미 익명의 하느님 나라를 살았던 현인들같습니다.

“옛 어른들은 항상 삼가고 번민했기에 오히려 근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다산>

당신 수의를 미리 마련해 놓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던 친지 옛 여러 어른들도 생각납니다.

 

“군자는 평온하고 너그럽지만, 소인은 늘 근심하고 두려워한다.”<논어>

옛 군자라 할 수 있는,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던 선비들의 삶이 그리워 영조시대, ‘추사 김정희’를 능가한다는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1 회화, 2 서예’(박희병) 2300쪽에 달하는 양권의 방대한 책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옛 아름답고 깊은 전통과 너무 단절되어 있는 오늘날의 얕고 엷은 천박(淺薄)한 세태에서 초연하고 싶은 갈망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기도 역시 생각납니다.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시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빛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희망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사랑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평화가 되게 하소서”

 

끊임없이 솟아났던, 한마디로 제 인생자체가 주님이, 하느님 나라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 때 언제 어디나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아 나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살지 못하면 다른 어디서도 살지 못합니다. 죽어서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저에게는 매일 수도원 경내 산책이 성지순례입니다. 어디나 하느님 계신 하느님 나라의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하더라도 나서지도 말고 따라 가지도 마라.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 살 때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 이들은 요지부동(搖之不動), 결코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습니다. ‘밖으로는 천년만년 임기다리는 산처럼, 안으로는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강처럼’, 늘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삽니다. 산과 강의 영성은 베네딕도회 정주수도승들의 삶을 늘 새롭게 하는 자랑스러운 영성이기도 합니다. ‘산과 강’이란 옛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강(江)은

 흐르고 흘러도

 여전히

 산(山)곁에 있다

 

 나도

 흐르고 흘러도

 여전히

 임곁에 있다”<1999.1.28.>

 

바로 성인들이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살았습니다. 저절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고백이 나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거기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오늘 빤짝 한번 나오는 제1독서 필레몬서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오네시모스를 위해 필레몬에게 보낸 격조높은 서간이 참 깊고 향기롭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사는 성인들의 글은, 말은 이렇듯 깊고 향기로워 영혼을 위무하고 치유합니다.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이런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형제여!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덕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이 생기를 얻게 해주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겸손한 사랑이, 예의와 배려, 존중의 사랑이 가득 담긴 참 깊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간곡한 청이 담긴 서간입니다. 무례하거나 불손한 면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네시모스에 대한 한없는 사랑, 필레몬 동지에 대한 끝없는 신뢰가 구구절절 감동적입니다. 옥중에서 쓴 수인서간이지만 하느님 나라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대자유인 사랑의 사도 바오로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서간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오늘 지금 여기 각자 삶의 자리, 꽃자리에서 하느님 나라의 꿈을 실현하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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