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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 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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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16,24ㄴ)
'무엇을 청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요한16,23ㄴ-28)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십자가 죽음 앞에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시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16,23-24)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가십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인가를 청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무엇을 청해야 하는가?'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보호자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일깨워 주시고, 우리를 바른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하는 큰 힘이신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성령을 청해야 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나의 온 존재를 내어 맡겨야 한다는 말씀으로 오늘 복음이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오신 예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한 아버지의 일을 모두 완수하시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슬픔과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성령을 청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성령을 청하고, 이 성령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는 하느님의 사랑스런 제자들이 됩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성령의 크신 힘으로 너를 사랑하고, 너를 용서하고, 너와 화해하는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조욱현 신부님_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26절)라고 말씀하시며, 이제부터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할 수 있음을 약속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단순히 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청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해서 다 참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분의 뜻과 사랑에 따라 행하는 것이 참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02, 요한 17 의역)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성화에 필요한 은총,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을 청하는 것이다.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24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기쁨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며, 덧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Homiliae in Ioannem 80, 요한 16,22 의역) 우리가 청해야 할 기쁨은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을 뵙고 그분을 누리는 기쁨, 곧 삼위일체적 친교에 참여하는 기쁨이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27절)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근본 진리를 듣는다.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들의 공로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본래 우리를 친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요한 사도는 이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라고 요약한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를 기도의 맥락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간청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기도하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De oratione dominica 29 의역) 즉,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입을 열어 기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28절) 이는 예수님의 파스카 여정을 요약한 선언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이렇게 권고한다. “그리스도께서 육신 안에서 하신 것을, 우리는 마음으로 완성해야 한다. 곧 세상에서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Homiliae in Evangelia 29 의역) 우리는 이제 부활의 기쁨 속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기도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드려지며, 그분은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우리의 청원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사랑과 구원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기쁨은 충만해질 것이며, 그 기쁨은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예수 하느님 마르코 복음서를 비롯한 공관 복음서가 예수님의 일생을 서술하는 과정을 보면, 매우 논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오신 목적에 따라 말씀과 행적으로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몇 차례에 걸친 예고와 함께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로 구원 사업을 완성하시는 과정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전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요한복음서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순서에 따른 논리보다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의 핵심을 중심으로 한 논리로 작품이 전개됩니다. 요한복음 1장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속에는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이미 전제되거나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 전례가 부활시기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 택하여 신자들이 열심히 읽고 묵상하도록 독려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 가운데,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마음이 충만해질 것이다.” 하는 말씀과, 이와 유사한 “그 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하는 말씀이 그러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부활하신 당신을 알아보게 될 것이며, 기쁨 또한 충만하게 될 것임을 내다보십니다.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거친 부활은 예수님의 결정적인 승리로서, 제자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 제자들이 미처 이해하지 못한 요소들, 제자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영구히 제거해 버리는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수 없었지만, 그분이 부활의 영광으로 들어가신다면, 제자들 곁에 늘 현존하시면서 중개의 권한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행사하실 것이기에,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 청하여 받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제자들은 아버지께 청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부여받으며,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하느님 아버지와 내밀한 친교 관계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중개는 단순한 중개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이 중개는, 제자들이 온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당신이 아버지와 이루시는 일치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리는 기도의 의미가 자리합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온전한 믿음과 사랑,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는” 데서 출발하여 완성되는 신앙인의 기본자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과 찬미를 올리는 부활시기 동안, 이웃 사랑을 통하여 우리의 주님 사랑을 더욱 드러내고, 하느님에게서 나오셨기에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무엇이나 다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을 더욱 다져나가는 나날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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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
2026-05-16 | 최원석 |
| 189632 |
양승국 신부님_기도의 목적은 황홀한 체험에 머무는 데 있지 않습니다! |
2026-05-16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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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 김건태 신부님 묵상 |
2026-05-16 | 최원석 |
| 189630 |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5/16) : 부활 제6주간 토요일 |
2026-05-16 | 최원석 |
| 189629 | 주님 승천 대축일|1| | 2026-05-16 | 조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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