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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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가해, 홍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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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08:00 ㅣ No.189645

[주님 승천 대축일 가해, 홍보주일] 마태 28,16-20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닫힌 뒤 그 누구도 열지 못했던, 아벨의 정성스러운 제물로도, 아브라함의 굳건한 믿음으로도, 하느님 뜻을 따르려는 모세의 열성으로도, 하느님 말씀을 전하려는 예언자들의 순명으로도 열 수 없었던, ‘천국의 문’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활짝 열어주신 날입니다. 성경에서는 승천하신 주님이 ‘구름에 감싸여 제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상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요.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랐을 때엔 구름이 산 전체를 덮어 그를 볼 수 없게 만듭니다(탈출 24,15). 타볼산에 오르신 예수님이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에도 갑자기 구름이 일어 일행 전체를 감쌉니다. 그리고 이 때 공통적으로 하느님의 뜻이 전해집니다. 모세가 구름에 덮였을 때엔 하느님의 뜻인 십계명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구름에 덮였을 때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체험은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보다 높은 차원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이 주님의 승천에 대한 기록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와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시기 전에 먼저 그들을 교육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교육이 끝나자 제자들 곁을 떠나 하늘로 오르시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주님께서 아주 멀리까지 가시어 시야에서 벗어나신 게 아닙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을 상징하는 구름에 감싸여 더 이상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신 것입니다. 그런 변화는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시는 순간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오르신 ‘하늘’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신 곳’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니 우리가 발을 딛고 서서 바라보는 모든 곳이 하늘이지요. 그러니 주님께서 그런 하늘로 오르셨다는 건 자연스레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존재로 변화되셨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던 주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그분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되어 아쉽고 막막한 마음에 멍하니 하늘만 바라봅니다. 주님도 안 계시는데 앞으로 힘든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그분께서 맡기신 중요한 소명을 자기들만의 힘으로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두렵고 걱정되었겠지요. 그러자 두 천사가 나타나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며 그들을 나무랍니다. 그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중요한 소명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라고, 다시 말해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광을 막연히 ‘동경’만 하라고 그들을 뽑으신 게 아니지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분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한 뒤 타볼산 정상에 초막을 지어 머무르려 했던 베드로처럼, 하늘에만 시선을 뺏겨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살아가신 땅, 즉 ‘세상’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저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거기서 행복을 누리는 이들을 부러움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는 종말의 날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목숨까지 내어주셨음을 널리 전하며,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삶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선포하는 ‘깨어 있는 종들’만이 주님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점을 상기시키시기 위해 그들에게 복음 선포라는 소명을 맡기십니다. 당신 능력이 부족해서 제자들에게 도움을 청하신 게 아니라, 그들이 말로 선포한 복음을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존재로 변화되도록 이끌고자 하신 겁니다. 즉 복음을 통해 그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신 것이지요. 그 초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미사 중에만, 입으로만 ‘신앙의 신비’ 운운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속에서 삶으로 살아내지 않는 신앙은 나를 하느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신비’를 이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삶 속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짙게 배어져 나온다면, 나의 손과 발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이 세상의 작고 약한 이들 한 명 한 명에게까지 전해진다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주님께로,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이끌릴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참된 영광과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격을 갖추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절망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을 끝까지 붙들려는 나의 의지와 노력 안에 그분께서 함께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는 우리의 자비로운 마음 안에 그분께서 함께 계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받은 아픔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용기와 결단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을 부족할지라도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겨보는 우리의 실천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이렇듯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처럼 언제 어디서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부터 ‘승천’을 사는 방법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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