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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살려는 마음: 우리를 지옥으로 만드는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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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요한 12,24-25) 찬미 예수님!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가장 당혹스러운 역설을 선포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면 잃게 되고,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 자신을 사랑하라, 힐링하라, 아프지 마라"라고 가르치는데, 주님은 정반대로 우리 자신을 미워하고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영원한 생명을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은 곧 지금 여기서 누리는 완벽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도대체 왜 내 목숨을 미워하고 죽이러 가는데 행복해진단 말입니까?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행복입니까, 아니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행복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인간을 지옥처럼 불행하게 만드는 유일한 원인은 돈이 없는 것도, 병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오직 나를 보호하려는 얄팍한 '자아'에게서만 뿜어져 나옵니다. 어떤 숭고한 목적이나 하느님을 위해 내 목숨(자아)을 기꺼이 내어놓기로 결심하는 순간, 나를 보호하려던 자아는 완전히 힘을 잃게 되고, 자아가 죽었기에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아예 발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소멸한 바로 그 빈자리에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적인 평화, 그것이 바로 순교자들이 형장으로 가면서도 누렸던 충만한 기쁨의 정체입니다. 이 기막힌 심리적, 영적 원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을 영화 '명량' (2014)에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330척의 거대한 왜군 함대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조선 수군에게 남은 배는 고작 12척뿐이었습니다.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고, 장수들마저 싸움을 포기하고 배를 돌려 달아나려 했습니다. 압도적인 죽음의 위협 앞에서 모두가 '자기 목숨을 사랑하여'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때 대장선에 홀로 선 이순신 장군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엄명합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다!" 그리고 장군은 11척의 배를 뒤에 남겨둔 채, 홀로 적진 한가운데를 향해 배를 몰고 나아갑니다. 수백 척의 적선이 쏘아대는 포화 속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완벽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여러분, 홀로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배를 몰고 나아가는 장군의 마음은 두려움과 불행으로 가득 찼을까요? 아닙니다.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내 한 목숨을 온전히 미워하며 내던진 순간, 장군의 영혼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숭고한 평화와 벅찬 자존감으로 타올랐습니다. 반면, 11척의 배에 숨어서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라고 바둥거리던 장수들과 병사들의 마음은 행복했을까요? 그들의 영혼은 수치심과 극도의 공포에 짓눌린 참혹한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자아를 살리려 할수록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커져 그들을 질식시켰습니다. 하지만 밀알이 되어 앞장서서 죽어가는 대장선의 그 숭고한 빛을 보았을 때, 숨어있던 장수들의 영혼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그들 역시 '살고자 하는 얄팍한 자아'를 버리고, 기꺼이 노를 저어 사지의 바다로 뛰어들며 위대한 승리를 만들어냅니다. 나를 버리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적 같은 구원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출처: 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9월 15일 자) 우리를 괴롭히는 두려움은 철저히 자아의 생존 본능에서 옵니다. 내가 손해 볼까 봐, 내가 무시당할까 봐, 내가 아플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자아를 우상으로 모시고 사는 인간은 하루 24시간을 방어막을 치느라 에너지를 소진합니다. 살기 위해 도망 다니는 비겁한 삶은 자아를 한없이 비대하게 만들고, 커진 자아만큼 잃을 것이 많아지기에 불안과 초조, 두려움은 더욱 커집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이 위대한 원리를 자기 삶의 궤적으로 뼈저리게 증명하신 분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124위 순교 복자들입니다. 그중 최필공 토마스 복자님의 삶을 들여다보십시오. 최필공 토마스 복자님은 본래 궁중의 약을 짓는 내의원 소속의 엘리트 약제사였습니다. 그는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열심을 다했지만, 1791년 신해박해 때 체포되자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배교하고 맙니다. 풀려난 그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벼슬을 유지하며 육신의 생명과 자아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목숨을 보존한 그가 집에 돌아와서 행복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훗날 교우들에게 자신의 배교 시절을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하느님을 모른다고 배반하고 살아남았던 그 8년의 시간은, 매일매일 내 영혼이 불타는 끔찍한 지옥이었습니다. 숨을 쉬고 밥을 먹어도 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아를 보존하려던 비겁함이 끔찍한 두려움과 죄책감의 감옥임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 목숨을 철저히 미워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다시 교우들을 찾아가 회개하고 더욱 열렬히 복음을 전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됩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살이 찢기는 모진 고문 앞에서도 그는 배교를 거부했습니다. 처형장인 서소문 밖으로 끌려가는 수레 위에서, 최필공 토마스 복자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패배자가 아니었습니다.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에 두려움이 완벽히 사라진 그의 얼굴에는 천사 같은 평화와 미소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자아의 소멸이 가져다준 압도적인 구원의 행복을 누리며 그는 장엄하게 순교의 월계관을 썼습니다. (출처: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 오늘날 우리에게는 목에 칼을 들이대며 신앙을 버리라고 협박하는 포졸도, 피 냄새 진동하는 사형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며 어떻게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행복한 밀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 삶의 배교와 순교는 매일 일어나는 아주 작은 '선택의 순간'에 있습니다. 부부 싸움을 크게 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내가 미안해'라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내 알량한 자존심(자아)이 죽어야 하는 끔찍한 일입니다. 이때 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네가 먼저 사과하면 넌 지는 거야. 끝까지 기싸움을 해서 네 권리를 찾아! 무시당하면 안 돼!' 이때 내 얄팍한 자존심을 살리려고 며칠이고 입을 닫고 냉전을 벌이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판 '배교'입니다. 자존심을 지켜내서 이겼으니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마음은 터질 듯이 불안하고, 식탁에는 냉기가 흐르며, 방안은 지옥의 감옥처럼 춥고 외롭습니다. 자아의 목숨을 사랑했기에 오히려 평화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반대로, 끓어오르는 억울함을 꾹 누르고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자존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로 결심해 보십시오. 그 순간 내 자아는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지만, 그 즉시 내면을 짓누르던 모든 두려움과 불안의 얼음벽이 산산조각 나며 쏟아지는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내 자존심이라는 밀알이 죽었을 때, 가정을 살리는 거대한 부활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한 번 이 죽음이 주는 평화(순교)를 맛본 사람은, 더 이상 기싸움을 통해 자아를 살리는 쩨쩨한 지옥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상해』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서늘한 일침을 날리셨습니다. "그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아를 살려두면 두려움이 그대를 노예로 부릴 것이나,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미워하는 자는 세상 그 어떤 칼날도 건드릴 수 없는 우주적인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편 강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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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내가 청하는 것을 내가 존중하는지 먼저 물어야 |
09: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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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
09: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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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
09: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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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5/30) : 연중 제8주간 토요일 |
09: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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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나의 생애라도 |
08:06 | Mark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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