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일 (화)
(녹) 연중 제9주간 화요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21 ㅣ No.189906

성지순례를 가면 지도 신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례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여행객으로 왔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순례자로 왔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말이지만, 교우들에게는 순례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건강입니다. 낯선 곳에서 순례는 자칫 긴장하게 됩니다. 시차도 있고, 음식도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평소에 먹는 약이 있으면 꼭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순례 중에 몸이 아프면 본인은 물론 함께 순례하는 동료에게도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소지품입니다. ‘여권, 지갑, 스마트폰은 꼭 챙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여권은 분실하면 순례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은혜로운 성지순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35년 동안 성지순례를 여러 번 다녔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이런 원칙을 늘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례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미사와 기도입니다. 미사 중에 강론과 더불어 순례의 여정을 되풀이해 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를 다녀왔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몇 번씩 다녀온 저도 그렇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는 묵주기도를 하자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기도를 인도하지만, 나중에는 조별로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권고합니다. 묵주기도와 성가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하며, 왜 여기에 있는지 돌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번에는 하지 못했는데 순례의 마지막 날에는 전체가 모여서 다과를 나누며 소감 발표를 합니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순례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새삼 알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듯이, 순례의 여정 중에 교우들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사도로서 몇 가지를 당부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박해받고, 고난받는 것이 오히려 은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칼을 오래 쓰면 칼날이 무뎌지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나태해지고, 세상의 유혹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도 자칫 쇼핑에 눈이 먼저 가거나, 이웃의 작은 허물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실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지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허락하시고, 시간을 허락하시고, 능력을 허락하셨기에 성지순례를 올 수 있었기에 더욱 감사드리자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불교는 윤회를 이야기합니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되풀이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생로병사의 수레바퀴가 계속 돌아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내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통이 반복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번뇌를 벗어나는 길은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깨달은 사람은 마치 달걀이 병아리가 되듯이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듯이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일 것입니다.”

 

깨달음의 삶, 부활 이후의 삶은 죽어서만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부활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 성녀가 걸어갔던 길이 바로 부활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