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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4일 (목)
(녹)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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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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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03:44 ㅣ No.189942

 

2026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미국 아이오와 주립 대학교 더글라스

젠타일의 연구팀 내용이 있습니다.

대학생 496명을 네 그룹으로 나눠서

12분간 캠퍼스 안을 걷도록 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대해 마음속으로

다음의 특정 생각을 품도록 지시했습니다.

1) ‘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이라며 따뜻한 마음을 보냄.

2) ‘나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를 생각하도록 함.

3) ‘내가 상대보다 뛰어날 것

같은 점’에 주목하도록 함.

4) 상대방의 복장이나 물건에

대해 관찰하도록 함.

그 후 참가자들의 행복감,

불안, 공감도, 타인과의 유대등을

측정했습니다. 과연 어떤그룹이

가장 좋은 효과를 보았을까요?

첫 번째, 타인의 행복을 바랐던

그룹이 가장 행복감이 높았고,

불안이 감소했으며, 공감도와

사회적 유대감에서도 좋은 수치

를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면 결국 자기에게 좋은

영향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선사시대에는 집단을 이루며

살 수밖에 없었기에, 그 유전자가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져서 협력관계

안에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계된 우리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행복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타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라고

묻습니다. 이는 당시 율법학자

사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질문이었습니다. 수많은 계명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

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라는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학자는 ‘첫째가는 계명’ 하나만을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시면서 둘째

계명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31)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계명’은 복수가

아닌, 단수입니다. 이 두 가지 계명을

묶으신 것입니다.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비의 실천 없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

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가장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이를 알게 된

율법학자는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간다고 하지 않으시고, 가까이 있다고만

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는 것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천입니다.

이 사랑의 실천만이 결국 나를

행복의 길로 들어가게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다.

사랑은 우리의 본성이다.

(루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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