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
|---|
|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생활 성가 대회’가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나는 꽃이야’와 ‘감사해’가 공동체 안에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많은 교우가 함께 무대에 올라 하느님을 찬양했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가 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올해는 ‘인생’이라는 노래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교우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노래의 가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길고 길었던 겨울/ 봄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견뎌내고 보니 어느덧 봄이더라/ 숨 막히게 더운 여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참아내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움/ 등불 같은 친구 곁에 있었고/ 멀고 먼 길 홀로 걸을 때/ 누군가 내 손잡고 함께 걸으니/ 걸어온 길 돌아보니/ 나의 이야기 남아있고/ 빛바랜 기억과 흘린 눈물/ 우리의 인생이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움/ 등불 같은 친구 곁에 있었고/ 멀고 먼 길 홀로 걸을 때/ 누군가 내 손잡고 함께 걸으니/ 걸어갈 길, 눈 들어보니/ 까마득해 보이지만/ 새겨질 발자국 하늘빛 미소/ 그것이 은총이라” 고된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추억과 기억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사람을 잘못 만나서 쫄딱 망했던 기억, 공부 잘해서 의대에 갔던 아들이 지독한 스트레스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던 기억, 푸른 꿈을 안고 왔는데 아들은 평생 투석해야 하고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엄마는 혈액암으로 긴 투병을 해야 했던 기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어린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성공하여 웃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죽을 줄만 알았던 아들이 건강을 회복하여 지금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투석하는 아들도 좋은 직장을 얻었고, 암 투병 중이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들과 딸을 선물로 보내 주셨고, 지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등불 같은 친구가 있었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함께 했었다고 합니다. 35년 저의 사제 생활을 돌아보면 ‘인생’의 가사처럼 추운 겨울도, 무더웠던 여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험난함의 길목마다 저를 지켜 주셨고, 좋은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사제 생활 첫해에 ‘유행성 출혈열’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인생은 하루만 살아도 ‘흑자’요, 인생은 ‘덤’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으로 갔을 때는 큰 본당으로 갔던 동창 신부님이 부럽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 삼 년이 제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딱 맞는 성당을 맡겨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신문사에서 의욕적으로 홍보를 시작했을 때입니다. 미국 서부와 캐나다 밴쿠버까지 특강과 신문 홍보를 한 달 반 일정으로 야심 차게 기획했습니다. 제 앞에도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덕분에 코로나 팬데믹 동안에 좋은 신부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주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사위는 사람이 던지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라는 잠언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합왕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봇의 포도밭을 탐합니다. 결국 악한 방법으로 그것을 빼앗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공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으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봇은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의 억울함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라.” 이 말씀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으면 되갚고 싶어집니다. 억울하면 똑같이 갚아 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악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를 살린 것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였고,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으며, 우리의 계산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하느님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세상은 “되갚아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눈물과 기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있었고, 앞으로의 길에도 그 손길은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이 고백처럼, 우리가 악을 선으로 이기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0104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6.14) |
05:44 | 김중애 |
| 190103 |
매일미사/2026년 6월 14일 주일[(녹) 연중 제11주일] |
05:43 | 김중애 |
| 190102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
05:27 | 조재형 |
| 190101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6월 14일 연중 제11주일 |
2026-06-13 | 박양석 |
| 190100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1주일: 마태오 9, 36 - 10, 8 |
2026-06-13 | 이기승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