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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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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해를 본 그대로 갚아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흔히 동태(同態) 또는 동해(同害) 복수법이라 불리는 탈리오법칙은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법전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총 282개조로 되어 있는 이 법전은, 제196조에서 ‘눈에는 눈’을, 197조에서 ‘뼈에는 뼈’를, 200조에서는 ‘이에는 이’를 법적 정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적 사안이 아닌, 요즘으로 치면 민사적 사안에 대해서도, 이 법전은 어김없이 동태보상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형법의 발전에서 아직 벌금형이나 구금형이 마련되어 있지 않던 상황에서, 이 동태복수법이 기여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무제한적 복수를 금지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피해를 본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부 조항으로 들어가 보면, 이런 규정이 나옵니다. 목수가 누구 집을 잘못 지어 지붕이 내려앉고 그 통에 집주인의 아들이 깔려 죽었다면, 공정한 보상 차원에서 목수의 아들이 죽음에 부쳐져야 했습니다. 집주인의 딸이 죽었다면, 목수의 딸이 죽어주어야 했고, 집주인이 깔려 죽었다면, 당연히 목수 자신이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현대 코미디물의 대본 작가들이라면, 이 동태복수법으로부터 재미난 대사들을 얼마든지 엮어낼 만합니다. 예를 들어, 개에게 엉덩이를 물렸으면, “너도 가서 개 엉덩이를 물어라. 엉덩이 이상은 안 된다.” 고양이가 생선을 훔쳐 갔으면, “너도 가서 고양이의 생선을 훔쳐라. 생선 이상은 안 된다.” 등등 말입니다.
그러나 웃을 일도 아닙니다. 근동(近東)에서 발원한 동태복수 문화는 수메르나 아카드,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 등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서양 문명의 양대 초석이 된 히브리 문명과 그리스 문명에 전승되었고, 지중해 일원으로, 그리고 결국 이슬람 전통 속으로도 침투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떤 형태로든 복수라는 개념과 거리가 너무나 먼, 그래서 충격적이면서도 명료합니다: “다른 뺨마저 돌려 대주고, 겉옷까지 내주고,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구약시대였다면, 이와 같은 전대미문의 가르침에 대하여 우리는 이러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희 (인간) 입장에 서 계시다면, 과연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나 그 주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가르치신 그대로 살아가신 이상, 더 이상의 항변, 더 이상의 이의 제기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언행일치의 삶, 지행일치의 삶, 나아가 믿는 대로 실천에 옮기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신앙인들로서, 다른 뺨을 대주고 겉옷까지 내주고 이천 걸음까지 가주기는 당장 힘들어 보인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 그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내려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셨고,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마음만이라도 그대로 본받고자 노력하는, 귀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나는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구약 율법의 정신을 완성하시며, 인간적 정의의 기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윤리를 가르치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탈출 21,24)는 동태 복수법을 억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복수 자체를 초월하는 사랑의 길을 제시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대목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께서 ‘다른 뺨을 돌려대라’ 하신 것은 단순히 악을 참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악을 선으로 이기고, 가해자마저 변화시키라는 초대이다.”(Homilia in Matthaeum, XVII, 4 요약) 즉,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사랑으로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능동적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이 가르침을 당신 몸으로 실현하셨다. 채찍에 어깨를 내어주셨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도 저주하지 않으셨으며,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라고 기도하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먼저 당신 자신이 원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De sermone Domini in monte, I,19,58 재구성) 그분은 단순히 이상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삶과 죽음을 통해 완성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겉옷까지 내주어라.”(40절)라고 하신 말씀은 물질적 소유를 넘어, 우리를 의롭게 하는 더 깊은 차원의 ‘옷’을 가리킨다. 교부들은 이것을 ‘세례로 입는 새 인간’(에페 4,24)으로 해석한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주석한다. “육신의 옷을 잃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움의 옷, 곧 그리스도를 잃는다면 우리는 가장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Commentarium in Matthaeum 요약)
교회는 이 구절을 단순한 윤리적 교훈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하는 초대로 해석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성령의 은총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함으로써만, 우리가 인간적인 보복 본능을 넘어 하느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1825, 1965, 2842-2845항 참조)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더 나은 의로움’(마태 5,20)을 요구한다. 세상은 여전히 힘과 보복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용서와 자비의 논리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불가능해 보이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악을 참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명령하신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오직 사랑과 자비뿐이다. 우리가 성령의 은총 안에서 ‘다른 뺨을 내어주는 용기’를 낼 때, 세상은 조금씩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9ㄱ)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
오늘 복음(마태5,38-42)은 '폭력을 포기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입니다. 곧 받은 만큼만 되돌려 주는 복수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방법 마저도 거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조금도 손해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인데, 과연 불가능해 보이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악과 맞서 싸워 승리해야 하는데,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말씀인가?
이런 물음 앞에서 예수님의 오늘 말씀이 이렇게 다가 왔습니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말씀으로,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욕과 상처가 너를 죽이는 증오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더 내어주는 나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은 '모든 모욕과 상처를 짊어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 표지인 십자가'입니다. 오늘도 온전한 믿음 안에서, 그분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우리농은 흙사랑, 땅사랑, 생명운동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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