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7일 (수)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김건태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36 ㅣ No.190154

김건태 신부님_자선과 기도와 단식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신앙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길과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으나, 중요한 것은 그 자세입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자선이란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행위, 다시 말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행위이어야 하며, 하느님을 향한 기도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겸비한 행위이어야 하며, 하느님을 향한 단식이란 설령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 죽더라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 철저한 자기 비움의 행위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다는 것은 이웃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웃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자선이란 그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재물만이 아니라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행위를 말하며, 이웃을 향한 기도란 내 뜻 이상으로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살피는 행위를 말하며, 이웃을 향한 단식이란 이웃과 동일한 공동 운명체임을 마음에 새기고 음식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삼가고, 필요하다면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느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향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를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자선이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행위를 말하며, 나를 향한 기도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와 뜻을 함께하고자 얼마나 인내하며 애쓰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행위를 말하며, 나를 향한 단식이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와 하나 되고자 무엇을 버리고 끊고 있는지를 다시금 살피는 행위를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최소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한 점들만이라도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는 자세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에서 이타적인 나로 나아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신 우리 본래의 모습, 순수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과 이웃, 끝내 나를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으로 나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제목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6.17)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6,1ㄱ)

 

'생명운동에 동참하자!'

 

오늘 복음(마태6,1-6.16-18)은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요지는 지금 여기에서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의 자선과 기도와 단식 행위를 감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네 자선(기도와 단식)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4)

 

저는 지금 '전국 우리농 담당 사제들 모임'이 있어서 경남 산청 성심원 교육회관에 와 있습니다.

10년 만에 이곳에 왔는데, 고향에 온 기분입니다.

오늘까지 이곳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어제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지금 우리농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나눔을 했습니다.

 

참으로 쉽지 않아 보이는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위기와 공동의 집인 지구가 처한 위기 앞에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농'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의 줄임말입니다.

흙과 땅과 물을 살리기 위해, 더 나아가 나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생명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민들이 많이지고, 이들이 창조해 낸 생명물품들을 잘 소비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우리농입니다.

더 움직이고, 더 땀을 흘려야만 얻어지는 생명물품들이기에 가격 경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농은 흙사랑, 땅사랑, 물사랑, 생명운동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문구입니다.

마음으로, 기도로, 그리고 구매와 후원(CMS)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생명 살리기 운동에 함께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농어민들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죽어가는 지구를 다시 살립시다!

 

(~ 욥기39,30)

 

우리농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올바른 자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외형적인 행위보다 마음의 자세, 즉 내적 정직과 겸손을 강조하신다. 자선과 기도, 단식 등 신앙생활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서 행해져야 참된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1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에 대해 말한다. “참된 자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De Sermonibus Domini in Monte, 1,5 참조) 즉, 오른손과 왼손의 비유는 우리 마음의 이중성을 보여 준다. 오른손(의로운 마음)은 왼손(세상의 눈)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칭찬을 받기 위해 자선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적 계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선행이 아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골방에서 조용히, 하느님께만 향하는 기도여야 한다.(6절) 바오로 사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라고 권고한다. 기도는 단순한 말의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과 나 사이의 친밀한 교류이며, 천사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하늘의 경배와 일치를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이다. 겉으로 행한 기도는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Homiliae in Matthaeum, 19,4 요약)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도 남들에게 보이려 꾸미지 말라고 하신다.(16-18절 참조) 얼굴을 찌푸리고 연민을 자극하는 단식은 자신을 높이려는 행위일 뿐,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단식이 아니다. 교리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도, 자선, 단식은 외적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마음의 정직으로 하느님께 드려질 때 참된 가치가 있다.”(1969항 참조) 

 

나는 자선을 행할 때 하느님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칭찬을 의식하는가? 나의 기도는 단순한 의무감과 반복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향하고 있는가? 겉으로는 의로운 척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자랑이나 계산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모든 선행은 하느님께서 아시는 마음과 의도에 달려 있다. 참된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속에서 맺어진다. 우리가 수행하는 신앙의 행위, 즉 자선, 기도, 단식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참된 가치가 있다. 겸손과 마음의 정직 속에서 행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원한 상급을 쌓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