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8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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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2부> 참된 사랑의 길 - 하느님 사랑에서 영적 혼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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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2026-06-27 ㅣ No.2938

<묵상 에세이 2부>


✦ 참된 사랑의 길 — 하느님 사랑에서 영적 혼인까지


여러분은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만일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찾고 있지만 정작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앨런 에임스,『예수님의 눈으로 3』, 1998년 1월 1일 성모님 메시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찾고 있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기를 열망하지만, 사랑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오.’ 하는 말을 듣게 되기를 기다리며 살지만, 결코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이 눈먼 상태로 있다.

내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한다!’ 하고 얼마나 크게 부르짖고 계신지를 보지 못하고, 그것이 자기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을 무시한 채 이웃 사랑만을 추구하려는 그릇된 경향이 널리 퍼져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120. 정신과 마음과 몸이 순결한 사람,15)

"(...) 오늘날 숱한 내 아들들 사이에도 마구 퍼지고 있는, 대단히 그릇된 경향이 있으니, 하느님을 무시한 채 이웃 사랑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참된 사랑은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의 근원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큰 계명으로 하느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마태 22,37-38)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존재를 믿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그분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벼락을 맞았습니다』의 저자 글로리아 폴로 오르티스는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너는 나에게 어떤 영적 보물들을 가지고 왔니?"


이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였느냐?"

 

주님께서는 우리의 재능이나 업적보다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자신을 내어주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은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까지도 기꺼이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성화시키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가족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삶이 복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만일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 하느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술과 향락, 세속적 성공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그것을 끊어야 합니다. 지나친 취미와 자기 만족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 열정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내적 균형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모든 것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언제나 그분께 "예"라고 응답하는 길입니다.

 

(173. 너희의 내적 균형,13-15.17-18)

"너희도 이 천상 엄마가 걸었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즉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하는 길, 그리고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길이다. 나는 예수께서 너희에게 청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언제나 "예"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너희를 이끌어가고 있다. 내가 각별히 아끼는 이들 가운데도 예수께 참으로 "예"라고 말씀드릴 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내가 너희에게 가리켜보이며 인도해주는 길을, 순종과 자녀다운 맡김으로 나와 함께 걸어라.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여겨듣도록 너희를 기른다. 너희가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깨닫고 사랑하고 간직하며, 그대로 실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정화기인 이때,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말을 들으며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허다하다. 사실 내 원수가 날조된 초자연 현상들로 착한 사람들까지 유혹하며, 어디서나 거짓과 혼란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그는 앞으로도 숱한 기적을 행하여 착한 이들의 영혼을 속여넘길 것이다.

(...)

나는 티없는 내 성심 안에서, 내가 무척 사랑하는 아들들인 너희의 내적 균형을 잡아 주겠다. 너희가 한층 더 지혜롭고 균형잡힌 사람들이 될 필요가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 균형이야말로 너희 천상 엄마가 너희 안에서 이루고 있는 일을 만인에게 보여 주는 표가 될 것이고, 이 표를 보면 교회도 너희가 충실하고 지혜로운 아들들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사람, 즉 성화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223. '예, 아버지',3)

"오늘 너희 천상 엄마는 너희가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이루도록, 그것도 아주 잘 이루도록 도와 주고자 한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너희가 거룩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1데살 4,3)


(299. 하느님의 뜻,4)

"하느님의 뜻은 내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도 너희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있다! 너희가 삶을 통해, 갈수록 그분께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너희 정신을 양육하는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말씀을 거룩한 책인 '성서'에서 찾아라. 내 성자 예수님의 '복음'에서 말씀의 온갖 아름다움을 음미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지혜'를 주어, 너희가 '성서'의 비밀을 보다 깊이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 너희로 하여금 성서 말씀을 샅샅이 이해하고 즐기고 간직하며,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성화란 하느님을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결국 성화의 길은 영적 어린이가 되는 길입니다.

 

(109. 너희는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12-17)

너희는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만과 자부심으로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유혹하고 있는 사탄과 맞서기 위해서다.

너희가 겸손 안에 머물면 사탄은 절대로 너희를 유혹할 수도 기만할 수도 없음을 깨닫지 못했느냐?

너희는 갈수록 작아져야 한다. 이 엄마가 너희를 온전히 원하기 때문이니, 너희를 먹여 기르고 옷을 입혀주며 팔에 안고 다니려는 것이다.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의 뜻에 항상 "예"라고 답할 수 있다.

나와 함께 "예"라고 말씀드려라. 그렇게 해야 하느님 뜻에 완전히 순종한 나의 "예"가 너희 안에서 언제나 재현된다.

끝으로, 내 '발꿈치'(창세 3,15)를 이루기 위해 너희는 작아져야 한다. 사탄이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제 머리가 짓밟혀 부서질 내 겸손한 발꿈치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갓난아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듯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하느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지금까지 이러한 길을 걸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만 주님께 "예"라고 응답하려 했을 뿐입니다. 그 이후 하느님께서는 제 삶 안에서 직접 일하시며 지금도 저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에서도 고백했듯이,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제가 오랫동안 쌓아 올렸던 교만의 성을 하나씩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제가 의지하던 것들이 무너지고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을 때, 저는 죽음과 하느님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세상을 붙잡기보다 하느님의 자비에 저 자신과 저의 삶을 내어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저를 품어 주셨고 성모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고, 성모님께서는 올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고통과 시련을 통해 저를 회개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334. 나는 너희를 길러, 고난을 달게 받도록 해준다,6-8)

"나는 너희를 길러, 고난을 달게 받도록 해준다. 천상 성부께서는 내 성자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 사업'에 너희가 개인적으로 협력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그 뜻에 내가 너희와 함께 "예" 하고 순종함으로써 고난을 감수하도록 너희를 기를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 잔혹한 정화기의 내 모성적 임무는 무엇보다도 고통을 잘 참아받는 사람이 되게끔 너희를 기르는 것이다.

나는 또한 나의 모성적 현존으로 너희가 고난을 받아들이게 도와 준다. 어머니의 현존이 너희로 하여금 모든 고난을 완전한 사랑의 선물로 변화시키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렇개 나는 너희를 온순하고 상냥하고 마음이 겸손해지도록 양육하고,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 놓으셨듯이, 너희도 형제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하면 너희는 십자가를 기쁘게 지게 될 것이다. 고난이 감미로운 것이 되고 너희 마음을 참 평화로 이끄는 안전한 길이 될 것이다."


(345. 신적 계시에 이르는 길,6-7)

"나는 너희 하루의 모든 순간에 너희 곁에 있다. 나의 침묵으로 너희가 말하는 것을 도와 주고, 나의 음성으로 너희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내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바른 길로 데려간다. 너희가 피곤할 때면 내 현존으로 힘을 북돋아 주고, 고통을 받을 때면 엄마다운 사랑으로 위로해 주고, 나의 힘있는 전구로 너희의 사도적 활동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가 실망과 내적 메마름을 느낄 때면 내 티없는 마음으로 기쁨과 평화를 선물한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영혼은 회개와 정화, 순종과 희생의 과정을 거치며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끌립니다. 교회의 위대한 성인들은 바로 이 여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여정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설명한 「영혼의 성」의 길과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어두운 밤」의 길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두 성인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영혼은 정화를 거쳐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죄와 악을 끊고 회개하는 정화의 길을 걷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음"에 있습니다. 그 끊음은 자기부정과 자아포기이며,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복음 말씀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혼이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께 마음을 열 때, 하느님께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영혼 안에서 일하시며 깊은 정화를 허락하십니다.

 

이후 영혼은 때로 메마름과 시련, 오해와 고독, 영적 어둠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버림받음이 아니라 사랑의 준비 과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혼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시며 더욱 깊은 사랑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마침내 영혼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에 이르게 됩니다. 성녀 데레사는 이를 "영적 혼인"이라 부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를 "변형적 일치"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인간이 하느님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 속에 들어간 쇠가 불처럼 뜨거워지듯이, 영혼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깊이 변화됩니다.

 

이 상태의 특징은 특별한 체험이나 신비 현상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깊은 겸손과 순명, 사랑과 희생, 그리고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예수님을 뵌 이후 한 가지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삼위 하느님만이 우리의 참된 보물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 세상이 약속하는 성공과 쾌락, 그 어떤 것도 하느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 영혼을 완전히 만족시키실 수 있습니다. 결국 영성 생활의 목적은 특별한 체험도, 환시도, 탈혼도, 신비 현상도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과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하느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고, 회개는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끌며, 성화는 마침내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곧 영적 혼인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것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고 모든 성인들이 걸어간 길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걸어가도록 초대받은 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첫째로 사랑하십시오.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정화하시고 변화시키시어 마침내 당신 사랑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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