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일 (수)
(녹)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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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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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04:45 ㅣ No.190375

2026년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시련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최고조로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던 시련이 조금씩 극복됩니다. 그리고 이보다 작은 시련이면(또는 같은 크기의 시련이면) ‘이쯤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시련을 통한 스트레스가 우리의 면역력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5년 전, 처음 갑곳성지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막연하게 ‘잘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갑곳성지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보일러도 없고, 온수도 나오지 않고, 아토피까지 생겼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순례객도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위 ‘노가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있는 미사에는 동네 어르신 한두 분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포기하고 싶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활이 신부 생활에 큰 면역력으로 자리 잡아서 웬만한 일로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승용차에 운전사와 조수석에 한 명씩 타고 있습니다. 아주 먼 거리로 장거리 여행을 합니다. 이 둘 중에 누가 더 힘들까요? 운전하는 사람이 더 힘들 것 같지만, 실제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조수석에 앉으면 운전자와 같은 시야로 전방을 주시하게 됩니다. 다른 차가 끼어들 때, 내 차가 차선을 바꿀 때, 속도를 낼 때…. 운전자처럼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자기가 차를 제어할 수는 없기에 피곤한 것입니다.

 

조절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배려가 놀랍지 않습니까? 면역력을 주시고, 조절 가능성까지…. 감사의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이들을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고을 주민들의 반응은 치유되어 건강해진 것에 환희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명도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이고, 그 고을 사람들은 자기 이기심과 물질적 풍요를 지키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사실 마귀들은 예수님의 권위 앞에 쫓겨날 것을 직감하고 부정한 짐승인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들어간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 물속에 빠져 죽습니다. 이렇게 악령의 궁극적인 목적이 생명의 파괴와 죽음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악령의 목적을 따르는 우리는 아닐까요? 그래서 폭력과 생명 경시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목적을 따라야 합니다. 그 목적은 오로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구원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진실로 마음을 견고하게 세워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간다면 태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정약용).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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