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0일 (금)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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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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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12:33 ㅣ No.190544

요즘 우리는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길도 찾고, 비행기표도 사고, 은행 업무도 보고, 모르는 말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고, 서류를 작성하고, 기다려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몇 분 만에 해결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저도 체크카드를 다시 발급받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은행에 전화하거나 지점에 가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니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참 편리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공지능은 분명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성과 창의력의 결실입니다. 병원에서는 질병을 더 빨리 진단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번역을 도와줍니다. 저도 강론을 준비하거나 번역할 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인공지능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는 첫 회칙 위대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까?”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의 소리입니다. 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연민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책임지는 자유입니다. 인공지능은 빠르게 계산할 수 있지만, 회개할 수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십자가를 대신 질 수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말을 번역할 수 있지만, 상처받은 이의 눈물을 닦아 주지는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권력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 삶을 흔들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술의 발전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똑똑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성서는 오래전에 바벨탑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사람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세우는 탑은 결국 무너집니다. 오늘날 인공지능도 새로운 바벨탑이 될 수 있습니다. 소수의 기업과 권력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진실보다 이익을 앞세운다면 기술은 축복이 아니라 지배의 도구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는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과 공동선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또 하나의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교황님은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노예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교회의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교회도 역사 안에서 노예 제도를 분명하게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노예 제도를 묵인했고, 때로는 정당화하는 데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교황님은 이것을 그리스도교 기억 안의 상처로 바라보며, 인류와 역사 앞에 용서를 청했습니다.

 

남의 죄를 꾸짖기 전에 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이고, 그것이 복음의 길입니다. 바로 그 회개의 마음으로 오늘의 새로운 노예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손가락 하나로 편리함을 누리는 동안,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데이터를 분류하는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들어가는 광물을 캐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의 노예제가 사람의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면, 오늘의 새로운 노예제는 가난과 불평등과 탐욕으로 사람의 삶을 묶어 놓습니다. 우리는 편리함만 보지 말고, 그 편리함 뒤에 숨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비자이기 전에 형제자매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면, 우리는 그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은 전쟁의 도구가 될 때 더 무서워집니다. 오늘날에는 가짜 뉴스가 사람들의 분노를 키우고, 알고리즘이 증오를 퍼뜨리며, 무인 무기와 자동화된 전쟁 기술이 생명을 숫자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나 평화는 더 강한 무기에서 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더 빠른 컴퓨터에서 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들고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삶이 아닙니다. 기술의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되 스마트폰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입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되 양심의 판단을 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편리함을 누리되 가난한 이웃을 잊지 않는 삶입니다. 정보를 많이 얻되 진리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교회가 과거의 상처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듯이, 우리도 오늘의 편리함 속에 감추어진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회개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기계보다 크시고, 우리가 쌓은 탑보다 높으시며, 우리의 모든 지혜보다 깊으신 분입니다. 그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인간답게, 신앙인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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