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
|---|
|
2026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비평가나 평론가의 글이나 말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됩니다. 어느 책을 읽었는데 도무지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제대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어느 평론가의 글이 작품 설명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에 이런 뜻이 담겨있었다니….’라면서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해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평론가의 글은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평론을 쓸 수 있었을까요? 아마 많이 읽고, 많이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하느님의 작품을 보십시오. 과연 설명 없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쉽게 판단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판단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평론가의 노력을 떠올리며 우리 역시 주님을 알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계속 읽고 기도와 묵상으로 그 뜻을 계속 생각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좋으신 주님을 제대로 알고, 그분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신적 기원을 드러내는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믿고 받아들이는 데 더뎠던 세 고을의 사람들을 엄하게 꾸짖으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게 된 이들을 따듯하게 칭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는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많이 배우고 영리하다고 자부하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곧 종교 지도자들이 아니라 ‘철부지들’이라고 하십니다.
철부지는 단순히 학식이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겸손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오직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어린아이처럼 하느님께 철저히 내맡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를 떠올리면, 주로 사회의 낮은 계층과 노예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알려진 것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그러면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통하여 아버지를 아는 것이 당신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말씀하십니다. 그 선물이 2,000년 전에만 주어진 것일까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 선물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에 빠져서는 절대로 그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철부지와 같은 겸손을 갖추고, 자기 부족을 인정하면서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면서 기도와 묵상으로 주님 안에서 머물러야 선물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예술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신앙의 반대는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그리고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엘리 위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0617 |
제마음. |
2026-07-14 | 이경숙 |
| 190616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
2026-07-14 | 박양석 |
| 190615 |
무더위 |
2026-07-14 | 이경숙 |
| 190614 |
굴복 |
2026-07-14 | 이경숙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