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1일 (화)
(녹)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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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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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29 ㅣ No.190720

이병우 신부님_"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형제들이냐?"(마태12,48) 

 

'우리 모두 형제자매들!' 

 

오늘 복음(마태12,46-50)은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한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마태12,47)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9)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은 한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한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돈과 권력과 명예를 쫓아가는 그런 삶, 그것을 주인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 할 '십계명'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새 계명'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둘.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셋.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넷. 부모에게 효도하라.

다섯. 사람을 죽이지 마라.

여섯. 간음하지 마라.

일곱. 도둑질을 하지 마라.

여덟.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아홉.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열.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럴까?

아니 그런 말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느님을 닮은 존재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비인격적인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두고, '개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심한 말은 '개 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아무도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것'이라는 권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 사람이여, 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의 모습대로 그대의 육신을, 또한 당신 자신과 비슷하게 그대의 영혼을 창조하시고 지어내셨으니(창세1,26 참조), 그분께서 그대를 얼마나 높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창조주를 그대보다 더 잘 섬기고 인식하고 순종합니다."(권고5,1-2) 

 

피조물보다도 못한 나는 아닌지?

개만도 못한 나는 아닌지? 

 

모든 복음 선포자들, 곧 교황과 주교와 사제 그리고 수도자와 신자들 모두가 날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그래서 날마다 다시 시작하는, 다시 부활하는 형제자매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잠언8,36) 

 

조욱현 신부님_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48절)라고 물으시고,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49-50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단순히 혈연적 관계를 넘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의 가족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즉, 참된 신앙 공동체는 혈연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라고 하셨다. 이는 하느님 사랑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을 요구한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형제, 자매, 어머니가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았기에, 세상에 생명의 빛을 가져다주는 참된 어머니가 되었다.”(De Sancta Virginitate 요약)라고 설명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우리는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마리아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낳아주는 소임을 수행할 수 있다.”(Homiliae in Matthaeum 52 해석)라고 강조한다. 교리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선택된 어머니로 소개하며, 신자들이 말씀과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족으로 참여하도록 초대한다.(488-494, 501항 참조) 교회 전례에서 마리아를 모시는 이유는, 그녀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참된 하느님의 가족이 된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신앙을 가진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가족이 된다. 작은 행동과 사랑, 봉사가 곧 예수님의 형제 자매로 살아가는 증거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전하고,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작은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전도나 설교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신앙을 살아내는 모범적 삶이다. 가정과 교회, 일상에서 우리는 혈연보다 하느님의 뜻으로 묶인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서로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동반자로 인정하고 격려할 때, 교회는 참된 형제 자매 공동체가 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은 마리아처럼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낳아주는 삶인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단순한 신자보다 참된 하느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 작은 마리아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삶과 행동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할 때, 하느님의 가족 공동체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

오늘 복음 말씀은, 읽고 묵상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하며, 예수님이 마치 어머니를 부정(?)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스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성모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고 있으며, 거부의 근거로 오늘 말씀을 자주 들먹이곤 합니다. 하물며 우리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은 부정적 해석에 동조하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저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왜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 말씀 앞의 본문과 뒤의 본문을 살펴보아도, 오게 된 동기에 대한 암묵적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떠한 연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냥 온 것입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은 가족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신앙인의 가족 또는 모임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함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나아가 복음서에, 예수님의 가족이 언급되는 경우는 몇 번 있어도, 이들이 비난이나 질타의 대상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신 다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고 선언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세상과 인류의 구원에 있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시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으며, 끝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성자의 ‘아버지의 뜻’ 실현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신 분 가운데 으뜸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마리아의 품을 통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하느님의 뜻’이었지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순명의 말씀으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활짝 여신 분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모님은 공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분입니다. 마리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고통 가운데 일곱 가지를 뽑아 ‘성모칠고’(聖母七苦)라는 제명으로 기억합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길에서의 예수님 만남,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죽으심 목격, 성시를 품에 안으심, 무덤에 묻으심 등을 통한 고통의 깊이는 아마도 예수님 다음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머니를 제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 세워주셨습니다. 주님 승천 후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함께하셨다.” 하는 사도행전의 보도는(사도 1,14)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줍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에는 성모 마리아가 늘 함께하고 계십니다.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본받아,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품고 살아가는 신앙인,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신앙인, 성모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 속에 머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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