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8일 (화)
(녹)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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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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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09 ㅣ No.191276

이병우 신부님_"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태19,30)

 

'날마다 첫째가 되려고 노력하자!'

 

오늘 복음(마태19,23-30)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에 대한 말씀과 '따름과 보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19,23-24)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더 가진 자가 되고 싶어하고, "부자가 되십시오!" 라는 덕담을 주고 받는 우리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마태19,25)라는 제자들의 놀라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 복음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19,26)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에 대한 말씀과 '따름과 보상'에 대한 말씀이 이렇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이 나의 삶의 자리에 첫째에 자리잡고 있지 않으면', '오늘 회개하지 않으면',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이제와 영원한 구원'은 '지금 깨어있는 사람', '지금 회개하는 사람', '지금 믿고 지금 희망하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와 다니엘서'를 '대예언서'라고 합니다. 그 내용이 방대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대예언서들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 메시지는 '주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이며, '돌아오지 않는 완고함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지 않느냐?

누구나 빗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이 예루살렘은 한번 빗나가면 배반을 고집하느나?

그들은 거짓에 사로잡혀 돌아오기를 마다한다."(예레8,4-5)

 

'지금 회개하는 사람이 첫째'입니다.

'어제의 회개가 아니라, 오늘 회개하는 사람이 첫째'입니다.

'어제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아니라, 오늘 믿고 오늘 희망하고 오늘 사랑해야 첫째'입니다.

 

"이제 그날이 오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내가 몸의 할례만 받은 자들을 모두 징벌하겠다. 마음으로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예레9,24.25ㄷ)

 

날마다 오늘 첫째가 되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날마다 오늘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의인들이 됩시다!

 

(~ 예레10,25)

 

조욱현 신부님_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24절) 이 말씀은 단순히 부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뜻이 아니라, 재물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마음 상태를 지적하신 것이다. 재물이 우상이 될 때, 사람은 하느님보다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하느님 나라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교부들 역시 이 구절을 깊이 묵상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이 영혼을 쇠사슬로 묶는다. 재물을 바르게 사용할 때 그것은 덕을 위한 도구가 되지만, 그것을 붙잡을 때는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한다.”(Hom. 63 요약) 
 
제자들이 놀라며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25절)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26절)라고 답하신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말씀을 해설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누구도 교만과 탐욕에서 해방될 수 없다. 은총이 우리 마음을 치유하고, 재물을 사랑하던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이끈다.”(De gratia et libero arbitrio 요약) 또한, 베드로가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27절)라고 물은 것은, 단순히 보상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직의 의미와 그 결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오리게네스는 말한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집착을 끊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세상의 어떤 부보다도 더 귀한 ‘백 배의 상급’을 받게 된다.”(Comm. in Matt. 요약) 
 

주님께서는 끝으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30절)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기준은 다르다. 세상에서의 부, 권력, 명예는 하느님 나라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의 끝자리에서 모든 것을 잃은 자들이 하느님 안에서는 참된 생명과 상속을 얻는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세상에서 높임을 받은 이가 하늘에서 높임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세상에서 낮아진 이가 하늘에서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겸손한 자들을 위하여 마련되었기 때문이다.”(Hom. in Evang. 요약)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재물과 집착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은총 안에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 부를 버린다는 것은 하느님을 가장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첫째와 꼴찌의 역전은 세상 질서가 아닌, 은총의 질서를 드러내는 하느님 나라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오늘 말씀은, 어제의 복음 말씀을 바로 뒤따르는, 소위 낙타와 바늘귀로 유명한 비유 말씀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이 문구에는 분명 부자가 언급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제자들의 반응 곧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비추어 볼 때, 부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고, 사랑 실천에 최선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당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의 이 말씀 덕분입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구원 문제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정말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온 대로,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또 다른 엄청난 문제 앞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하느님의 존재 의미가 퇴색해 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하느님이 존재하실 이유가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의식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는 관념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율법을 성실히 준수했으니. 하느님은 그동안 고이 간직해오신 그 구원을 돌려달라는, 웃지 못할 논리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왜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바치셨는지 그 의도와 목적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믿고 있지만,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위대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구원이라는 선물을 거저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그 놀랍고 위대한 선물을 받았으니, 마땅히 화답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화답의 방법이 바로 기도, 봉사, 희생, 사랑 실천 등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희생해야 한다면, 의무감이 앞선 나머지 불안을 떨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한다면, 그렇게 마음 편하고 행복할 수 없으며, 나아가 누가 그 정도면 됐다 하더라도 더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마운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자비하신 우리 하느님은 구원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우리를 구원의 세계로 불러들이시기 위해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바치셨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구원을 꿈꾸고 희망하며 신앙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구원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게 될 신앙인답게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땀 흘려 일하며 많이 사랑하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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