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교회에 관한 ‘비밀’을 정리하며 ― 황폐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
|
지금까지 ‘교회에 관한 비밀’이라는 주제로 일곱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교회에 관한 ‘비밀’ - ①) 결정적인 십년 ― 배교와 악의 신비가 드러나는 마지막 때 (교회에 관한 ‘비밀’ - ②) 황폐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세워질 때 (교회에 관한 ‘비밀’ - ③) 세상을 구원하는 '거룩한 미사'의 희생 제사 (교회에 관한 ‘비밀’ - ④) 미사의 희생 제사는 어떻게 재해석되어 왔는가 (교회에 관한 ‘비밀’ - ⑤) 미사가 줄어드는 자리,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우는가 ― 아일랜드 (교회에 관한 ‘비밀’ - ⑥) 세계 가톨릭 교회의 변화 (교회에 관한 ‘비밀’ - ⑦) 다시 체나콜로로 ― 성모님과 함께 교회의 처음으로 그동안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 보면, 황폐를 상징하는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 일부에서는 사제 부족과 미사 봉헌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미사가 없는 자리를 다른 형태의 신앙생활로 채워가는 상황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와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상황을 모든 나라의 교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다니엘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매일의 제사가 폐지되는’ 흉측한 독성죄의 표징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앞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일랜드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루터교 전례신학자인 고든 W. 래스럽(Gordon W. Lathrop)의 전례신학을 참조하기도 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85. 마지막 때,21) "미사성제는 예수께서 '칼바리아'에서 이루신 희생 제사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차 열교(裂敎)의 교리를 받아들인 자들이 미사는 희생 제사가 아니라 다만 거룩한 만찬, 곧 예수께서 최후 만찬 석상에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한 미사' 집전이 폐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학적 영향이 교회 안에 계속 확산될 경우, 결국 거룩한 미사의 희생 제사에 대한 이해가 약화되고, 나아가 거룩한 미사의 봉헌 자체가 폐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황폐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실제 성당에서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기 어려워질 때, 그 빈자리를 다른 형태의 신앙생활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미사가 없는 주말에 말씀의 전례가 마련되고 평신도가 이를 인도하며, 호주와 미국에서도 미사를 봉헌하기 어려운 공동체를 위해 말씀의 전례와 공동기도, 경우에 따라 영성체를 포함한 거행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사제가 없는 주일에 말씀과 기도로 공동체가 모이는 형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러 나라에서 실제 미사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디지털 참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 자리에 말씀·기도·공동체 모임·영성체·디지털 참여 등의 형태가 들어서면서 미사가 없어도 교회의 신앙생활이 계속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에서 미사는 단순한 공동체의 기도나 친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봉헌하신 희생 제사를 성사적으로 현재화하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태들이 미사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있어도 미사성제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5항의 말씀이 연결됩니다. 교리서는 마지막 시련이 “진리를 저버리는 대가로 인간의 문제를 외견상 해결해 주는 ‘종교적 사기’”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사제 부족이나 미사 봉헌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사를 회복하기보다 미사가 없어도 말씀과 기도, 공동체와 디지털 참여를 통해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형태가 자리 잡고 그것이 미사를 대신하게 된다면, 이것이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황폐’가 세워지는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모이고 기도하며 교회 활동도 계속되지만, 그 중심에서 봉헌되어야 할 거룩한 미사성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형태가 차지하는 것,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황폐입니다.
사목계획이나 토론, 인간적인 수단만으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교회는 전통을 지켜낼 수 없을 것입니다. (330. 성체의 어머니,29) "너희의 사목계획이나 토론, 너희가 의지하고 믿는 인간적 수단들이 전체 교회에 완전한 쇄신력을 줄 수는 없다" (476. 너희의 사제적 충실,18) "이 시대에는 허다한 내 아들 사제들이 얼마나 기도에 소홀한지 모른다! 교회 내부에 이 내적 상처가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게 파고들고 있는지를 너희가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너희 역시 나와 더불어 많은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활동에 빠져 있다. 모든 사도직의 효과를 활동과 사목계획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쇄신은 인간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 너희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너희를 통해 역사하시며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 너희는 무익한 종이며 가난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기도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476. 너희의 사제적 충실,19) "기도로 돌아오너라. ‘성체 예수님’을 너희 기도의 중심으로, 너희 삶의 비결로, 너희 사도적 활동의 핵심으로 삼아라." (330. 성체의 어머니,29) "(...) 오직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분만이 가난하고 복음적이며 순결한 교회, 모든 인간적 의짓거리로부터 벗어난 교회, 거룩한 교회, 너희 '천상 엄마'를 닮아 흠도 주름도 없이 아름다운 교회(에페 5,27 참조)가 되도록 이끄실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으로 부르시어 양육하시고, 봉헌의 삶을 실천하는 체나콜로로 이끄시는 이유입니다. (156. 너희의 공적 사명,13) "너희의 체나콜로는 참으로 성체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이다: 너희의 기도와 사랑과 삶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께로 향해 있는 것이다." (259. 서로 사랑하여라,10-13) "내게로 오너라. 하나가 된 너희 모두를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내 '아들'께 인도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성체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께서 너희 상호간의 이 일치를 이루도록 도와 주신다. 또한 어떻게 해야 모든 형제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사랑이 되는지, 그 모범을 너희에게 보여주신다. 그러니 내가 성체 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께 데려다 줄 수 있도록, 너희는 함께 내게로 오너라. 너희 가운데, 세상 모든 감실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는 그분은 묵묵히 희생 제물이 되신 채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면 너희는 이 어머니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려고 너희에게 당부하는 모든 것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길을 가리키시는 성모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1456 |
[슬로우 묵상] 기다림 자체가 존재의 자리_성녀 모니카 기념일을 준비하며.. |
22:31 | 서하 |
| 2998 |
교회에 관한 ‘비밀’을 정리하며 ― 황폐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21:51 | 박소영 |
| 191454 |
??????.......답이 없으셨으니 뜻이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
21:29 | 이경숙 |
| 2997 |
(교회에 관한 ‘비밀’ - ⑦) 다시 체나콜로로 ― 성모님과 함께 교회의 처음으로 |
15:03 | 박소영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