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6일 (일)
(녹) 연중 제23주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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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6일 출처https://cafe.daum.net/bbadaking/4Zol/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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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6-09-05 ㅣ No.191694

2026년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르네 스피츠’는 감옥에서 태어나서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모아 돌보았습니다. 위생적인 환경, 충분한 영양 공급이 이루어짐에도 전염병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은 것입니다. 멕시코에 여행 갔다가 우연히 고아원 아이들을 봤는데, 매우 건강하고 잘 울지도 않았습니다. 분명히 이곳이 더 비위생적이고 영양 공급이 형편없는데도 말입니다.

 

비결은 이웃 마을 여성들이 매일 고아원에 와서 아기들을 안아주고 이야기와 노래를 해주는 데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스피츠 박사는 자기 책에 ‘접촉을 가진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지만, 피부 접촉 없이 유모차에서 자란 아이는 점점 약해졌다.’라고 썼습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다고 털이 없는 갑각류나 파충류처럼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피부에 상처를 입히기가 쉽습니다. 왜 털이 없을까요? 앞선 스피츠 박사의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털이 없는 이유는 접촉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털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피부 덕택에 우리는 온기를 느낍니다. 이 온기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온기를 나누는, 그래서 함께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형제를 되찾는 구체적인 절차를 보여줍니다. 그들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먼저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형제의 명예와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잘못을 공개하여 망신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퍼뜨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꾸짖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동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가 대화가 실패하면 곧바로 공동체 전체에 알리지 않습니다.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 상대방만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판단도 검증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가장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실패하면,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형제의 죄가 끝내 개인적 대화로 해결되지 않을 때,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고 하십니다. 그를 미워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세리 중 한 명을 제자로도 뽑으셨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과도 만나셨고, 또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구원의 대상으로 계속 기도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함께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제1독서에서처럼 형제가 죄의 위험에 빠졌을 때 침묵해서는 안 되고, 제2독서 로마서의 말씀처럼 모든 말과 행동의 동기가 사랑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말씀을 기억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 이 세상에 위대한 일은 없다. 오직 위대한 사랑으로 행한 작은 일들이 있을 뿐이다(성녀 마더 데레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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