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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3일 (일)
(녹) 연중 제24주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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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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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6-09-12 ㅣ No.191851

 

2026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예전에 신학생 때의 한 아이가 생각이 납니다. 이 아이는 마치 껌딱지처럼 부모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 나중에 결혼하면 부모 곁을 떠나야 할 텐데 괜찮아?”라고 묻자, 자기는 절대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영원히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지금 어떨까요?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고 있을까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배우자를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키도 크고 잘생긴 배우자의 멋진 모습이 보이고, 무엇보다 너무 친절하고 늘 배려해 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시댁 식구들도 자기를 한 가족으로 기쁘게 받아주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부모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전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이런 현실을 만납니다. 이미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사랑 가득하신 분입니까? 그분과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는 어떨까요? 당연히 행복한 삶의 완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함께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라고 묻습니다. 충만함과 완전함의 숫자 ‘7’을 쓴 것을 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고 말씀하십니다. 77번까지 용서하고, 그다음부터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예 계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마태 18,23)라고 말씀하십니다.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이 임금 앞에 끌려옵니다. 한 탈렌트를 약 6,000데나리온으로 계산한다면, 만 탈렌트는 6천만 데나리온이 됩니다. 한 데나리온을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계산하면, 쓰지 않고 자그마치 16만 년 이상 일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입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그런데 종은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마태 18,26)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임금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그래, 꼭 갚아라.” 정도는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줍니다. 유해도 아니고,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탕감해 줍니다.

 

이렇게 계산하지 않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런데 종은 문을 나서자마자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으라고 하지요. 그의 동료가 똑같이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마태 18,29)라고 말했지만, 그는 매몰차게 감옥에 가둡니다. 같은 종의 입장이지만, 이 사람은 갑자기 임금, 심판관의 모습을 취합니다. 계산하지 않는 하느님 사랑과 정반대로 계산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저를 이해해 주십시오.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식의 자비를 청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는 정의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저 사람에게는 기회를 줄 수 없어.”

 

신앙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느님께 얼마나 용서받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용서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계속 계산하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용서의 삶,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는 자비를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아닙니다. 그보다 이미 받은 자비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비유의 첫 번째 종은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서받았습니다. 그가 망하게 된 것은 용서받은 뒤의 태도입니다. 결국 심각하게 경고하는 사람은 단순히 죄가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 때마다 “제 탓이오”라고 고백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은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만 탈렌트를 탕감받고도 백 데나리온을 붙잡고 있는 종과 닮게 됩니다.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을 주님 안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어떤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먼저 당신이 그의 진정한 친구임을 확인시켜야 한다(에이브러햄 링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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