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2일 (화)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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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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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9-21 ㅣ No.192029

김건태 신부님_성마태오 사도

 

오늘 우리는 사도이며 복음 저자인 마태오 축일을 지냅니다. 마태오는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보수적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합니다.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마태오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2년 동안 먼저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후에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승마다 차이는 있지만, 마태오는 유다 지방을 순회하다가, ‘고대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로, ‘예로니모 순교록에 따르면 페르시아까지 가서 선교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교 장소가 전승에 따라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로 알려진 것처럼, 순교 또한 칼에 찔리거나 화형 또는 돌에 맞아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 마태오 축일을 맞아 우리는 그의 소명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공관복음인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도 등장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엔 소명 대상이 레위로 불리는 반면, 마태오 복음서엔 마태오라는 이름이 나오며, 나아가 그가 죄인 취급시되던 세리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복음 저자들이 사도로서 흠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진술하기를 피하려 했던 세리로서의 마태오, 마태오 본인은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자신이 본디 세리였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마태오는 온 마음으로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힘차게 선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따라라하는 전격적인 부르심에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릅니다.” 투명하게 부르시는 예수님과 이 부르심에 명료하게 응답하는 마태오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고 마음에 새깁니다. 마태오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부르심을 받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르시는 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부르심 당시의 마태오는 거룩하신 주님의 부르심에 걸맞지 않은 처지에 있던 사람입니다. 로마제국의 치하라는 정치적 상황에서 모든 세금은 로마제국으로 흘러 들어갔기에, 세리라는 직업 자체가 유다인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착복이나 횡령 등으로 어느 직업보다도 부정의 위험이 큰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요?하는 이의 제기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의제기였습니다.

율법 준수에 매여 있던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알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종하는 것조차 멀리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튼튼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이 아니라, 치유를 간절히 바라던 병든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밝히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 사도이며 복음 저자인 마태오 축일을 지내면서, 사도들을 기초 삼아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구성원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예수님을 마음 한가운데에 모시고 그분 말씀과 모범을 따라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을 굳건히 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나를 따라라. 그는 예수를 따라나섰다. 

 

1. 복음의 의미

오늘 복음은 세리였던 마태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곧바로 일어나 따르는 장면을 전해 준다. 마태오는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경멸받던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께 응답한다. 세속적 안정과 인간적 평판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마태오는 60~90년 사이 아람어로 마태오 복음서를 저술하여 유다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였고, 동방으로 선교를 떠나 순교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그의 삶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여 인간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례이다. 

 

주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불가항력적인 은총의 힘을 지닌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묵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한 말씀은 바다를 가르는 벼락과 같았다. 레위의 마음은 더 이상 세상 재물에 붙잡혀 있지 않고, 주님의 시선에 사로잡혔다.”(In Matthaeum hom. 30,2 의역) 곧, 주님의 부르심은 인간을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내고, 새로운 자유로 나아가게 한다. 

 

2. 교부들의 묵상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태오의 회심을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일어났다. 그의 마음이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몸도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Sermo 179,6 의역) 마태오의 즉각적인 순종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주님의 식탁 친교를 강조하며, “그리스도께서 죄인들과 함께 앉으신 것은 그들의 죄를 묵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인들을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In Matthaeum 9,9 의역)라고 한다. 주님은 죄인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며 변화를 일으키신다. 

 

3. 교회의 가르침

교회 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시어, 각자 처지와 상태에 따라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신다.”(11항 의역) 마태오의 부르심은 이 진리를 드러낸다. 주님의 부르심은 특정한 ‘의인’에게만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초대이다. 또한, 교리서는 강조한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 회개로 이끄시며,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것은 이미 하늘 잔치의 전조였다.”(545항 의역) 

 

4. 신앙생활의 적용

오늘 우리도 마태오처럼 주님의 부르심 앞에 서 있다. 우리의 자리, 곧 안정과 습관, 타인의 시선, 나의 계산에 매여 있다면,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어서는 순간, 주님께서 약속하신 자유와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큰 순교가 아니라도, 작은 결단의 순교를 통해 주님을 따를 수 있다. 가족 안에서 양보하는 것, 공동체 안에서 기꺼이 섬기는 것, 세상 속에서 진리 편에 서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마태오처럼 “일어나 따르는” 응답의 삶이다. 

 

5. 마침기도

“주님, 마태오 사도처럼 저희를 불러 주시는 그 음성에 지체하지 않고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매일의 삶에서 작은 자리를 떠나 새로움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자유와 기쁨 안에 살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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