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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8·15 광복절과 성모 승천의 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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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고 헤아리고] 8·15 광복절과 성모 승천의 신비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성모 승천’을 ‘신앙 교의’로 선포하였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으로 천상 영광에 들어 올림을 받으셨다.”
성모 승천 신앙 교의는 1950년에 선포되었지만 성모 승천 신심은 초기 교회부터 신자들 사이에 널리 전승되어 왔다. 4세기경 신약성서 외경 작품들은 성모 승천을 많이 언급하였고,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선포한 후 성모 신심이 발전하고 의식도 생겨났다. 서방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의 육신 승천 교의를 처음으로 정식 거론한 것은 투르의 사제 그레고리오(538~594)였고, 6세기경 ‘성모 마리아의 승천’이라는 문서가 여러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8~9세기경 성모 승천 교리가 신학적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교황 베네딕토 14세(1740~1758)도 성모 승천 교의를 재확인하였다(「성모 승천 대축일」, 『한국가톨릭대사전』, 7권).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를 선포하자, 육체적인 승천도 교의로 규정하고 공식화해야 한다는 청원이 쇄도하였다. 성모 승천 교의 선포가 신자들의 건의와 청원에 의해 시작되었듯이,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도 신자들이 성직자 파송을 거듭 청원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모님이 조선(한국)교회의 주보가 된 것은 당시 성모 신심이 깊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영향이 컸다. 1831년 조선교구를 설정하면서 교황청은 북경교구에 속해 있던 때 그대로 요셉을 조선의 주보 성인으로 삼았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성모님을 주보 성인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조선 입국을 하지 못하였고, 제2대 앵베르(L. Imbert) 주교의 정식 요청을 받은 교황청이 승낙하여 1841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요셉 성인과 조선대목구의 공동 주보가 되었다(2015년 경신성사성의 권고에 따라 성모 마리아만 한국교회의 수호성인이 됨). 한국교회에는 처음부터 성직자에서 일반 신자까지 깊은 성모 신심이 드러나 있다. 김대건 신부는 라파엘호를 타고 위험한 여행을 할 때 성모님께 의지하고 보호를 받았다. 1846년 11월 2일 다블뤼(A. Daveluy) 신부가 공주 수리치골에서 ‘성모 성심회’를 세운 것은, 김대건 신부의 체포로 일어난 병오박해로 인해 피신한 후 다시 지방 순회를 떠나기에 앞서, 조선대목구의 주보로 정해진 성모의 보호 아래 활동하고자 한 것이었다.
1917년 파티마 성모 발현 후 성모 신심은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파티마 성모 발현 25주년인 1942년을 맞아 전 세계를 성모 성심에 봉헌하였고, 1944년 예수 성심과 함께 성모 성심을 강조하면서 성모 성심 기념 축일을 지키도록 하였다. 이 시기는 제1·2차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많은 고통을 겪었기에 의지하고 보호해 줄 ‘천주의 성모’님에 대한 기도가 더욱 절실하였다. 1946년 비오 12세는 세계의 모든 주교와 신학자들에게, 동정녀의 육체적 승천이 신앙 교의로 규정될 수 있는지 자문을 구하였고, 이를 토대로 195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한 것이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 통치에서 광복된 날이기도 하다. 성모 승천 신앙 교의가 선포된 시대 배경과 과정은 전쟁과 고통을 겪으면서 의지와 보호가 필요했던 우리 역사와 닮아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과 광복절이 일치하는 것에 대해 한국교회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성모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항복한 날임과 동시에, 신비하게도 1549년 예수회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일본 포교를 위해 규슈(九州)의 가고시마(鹿兒島)에 도착한 날이기도 하다. 바오로 사도 이후 가장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하비에르 신부는 인도 고아·말레이시아 믈라카·인도네시아 말루쿠제도·일본에서 선교하였고, 1552년 중국 선교를 앞두고 중국 상촨섬(上川島)에서 선종하였다. 동아시아 선교의 개척자인 하비에르 신부의 후계자들이 중국 선교를 성공적으로 이어 나간 결과, 조선으로 천주교가 전해지게 된 것이다.
8월 15일 광복절은 성모님의 승천과 연관지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할 수 있고, 죽은 뒤 우리를 맞으러 나와주실 천상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 천상적 삶을 향하여 희망의 발걸음을 내딛게 해주시는 승천하신 마리아,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이렇게 특별하고 신비롭다.
[교회와 역사, 2024년 8월호, 글 김정현 미카엘라(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0 97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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