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수)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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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할 때와 기뻐 뛸 때가 서로 어우러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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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선 [bhmore] 쪽지 캡슐

2021-03-28 ㅣ No.145612

헨리 나웬  신부님(1932-1996)의

오! 그리고 늘! 3 월 28일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슬퍼할 때와 기뻐 뛸 때가 서로 어우러진다는 것>
Mourning and Dancing Touch Each Other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코헬 3,4).  하지만 슬퍼할 때와 기뻐 뛸 때는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때"가 반드시 서로 뒤따르는 게 아닙니다. 사실 그 "때"은 한 번에 올 수 있는 겁니다. 슬퍼할 때가 춤출 때로 그리고 춤출 때가 슬퍼할 때로 바뀌지만 한 때가 끝나고 다른 때가 시작하는 데가 어딘지는 또렷하게 보여주진 않습니다.

종종 우리는 슬픔을 통해 춤을 만들 수 있고 춤을추며 슬퍼할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동무를 잃어 버리지만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처 알지 못한 기쁨을 발견합니다. 성공을 축하하지만 잔치를 벌이면서도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슬퍼하는 것과 기뻐 뛰는 것, 침울한 것과 활짝 웃는 것, 울먹이는 것과 기뻐하는 것 – 이 모두가 마치 우리를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어릿광대의 슬픈 얼굴과 기쁜 얼굴처럼 함께 들어있는 겁니다. 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아름다움은 슬퍼할 때와 기뻐 뛸 때가 서로 어우러지는 데서 드러나는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Mourning and Dancing Touch Each Other
MARCH 28

“[There is] a time for mourning, a time for dancing” (Ecclesiastes 3:4). But mourning and dancing are never fully separated. Their “times” do not necessarily follow each other. In fact, their “times” may become one “time.” Mourning may turn into dancing and dancing into mourning without showing a clear point where one ends and the other starts.

Often our grief allows us to choreograph our dance while our dance creates the space for our grief. We lose a beloved friend, and in the midst of our tears we discover an unknown joy. We celebrate a success, and in the midst of the party we feel deep sadness. Mourning and dancing, grief and laughter, sadness and gladness – they belong together as the sad-faced clown and the happy-faced clown, who make us both cry and laugh. Let’s trust that the beauty of our lives becomes visible where mourning and dancing touch each other.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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