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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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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평가> (1821.11.11~1881.02.09/60세) 1. 다양한 견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지금까지 많은 비평가 학자들에 의해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그의 작품의 깊이와 넓이가 엄청난 만큼 비평가, 학자마다 주장이 다양하여 어떤 평가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다음에 그 다양한 평가들의 말을 간추려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벨자예프는,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아버린다면 인간의 고뇌를 덜 수 있을는지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철저하게 인간이 인간정신의 자유를 버리더라도 인간의 괴로움을 줄이고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 주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유 속에 놓여진 인간의 운명을 탐구한다. 그의 장편소설은 모두 인간의 자유의 비극이며 시련“이라고도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를 모델로 삼아 작품을 쓰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E. H. 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보다 훨씬 원시적이며 좀더 근원적인 세계이다. 그것은 로맨티스트의 인공적인 들판이 아니다. 더구나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나 영국 고전주의파의 질서 정연한 정원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세, 르레상스시대에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온갖 힘들이 충만하고 있는 숲 속의 작은 개척지이다“라고 말하였다. 멀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은 행동 또는 생활의 영웅이 아니라 사상의 영웅들이다. 그들은 엄격하게 생각하고 자기 사상에 대해서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설사 행동을 하더라고 그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상만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M. 바프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의 자기 의식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라도 그것은 내부를 향해 자기에게, 상대편에게, 제3자에 대해서 절박하게 얘기를 걸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창작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은 대화이며, 그것은 수단으로서의 대화가 아니라 자기 목적으로서의 대화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대화는 행동의 실마리가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평가는 제각기 나름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적 특징을 진지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남의 관점을 빌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세 가지 사실 사형선고, 귀양살이, 간질병 이 세 가지 사실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외떨어진 상태에서 살아왔다. 이미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에서 밝힌 것처럼 27세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풀려났다. 한 순간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삶을 밟고 넘어간 셈이다. 시베리아에서의 8년 동안 그가 치른 귀양살이는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행복과 격리된 상태에서 고독만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가 태어날 때부터 고질병으로 가지고 있는 간질은 일시적으로 그의 의식을 육체에서 떠나게 하는 경험을 안겨주곤 하였다. 위의 세 가지 사실은 보통 사람이 흔히 경험하기 힘든 비극적인 사건이며 현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극한적인 고뇌를 다루고 신에 의한 구원을 열망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자신이 그와 같은 처절한 상황에 휘말리고 그러한 병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만약 건전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단란한 가정에서 건강한 몸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 갔더라면 아마도 그는 비극적인 작품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며 작가가 되는 것조차 사양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형선고, 귀양살이, 간질병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원천이라고 본다. 사형선고와 귀양살이에 대해서는 그의 생애와 작품을 논할 때 여러 차례 적은 바 있어 더 이상 논할 것이 없지만 간질병의 경우 그의 많은 작품의 작중인물들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또한편 첨언하여 苦言 한마디 더 보탠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세상삶 處世批評> (1821.11.11~1881.02.09/60세)너무도 처참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삶은, 어찌 그렇게도 이세상에 온갖 미련을 갖고 통곡의 이야기(소설)로, 그토록 구구절절이 끝없이 하소연 하다가 떠났을까? 이세상 삶의 미련을 오히려 훌훌털고 떠나야될 운명의 처참한 인생삶,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세상 處世가 도저히 理解가 안가고, 안타깝고 너무도 가엾은 同情心만 가득 남아요. 감히 한마디 문학촌평~李도희(아오스딩) 拜.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글옮긴이~李도희(아오스딩)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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