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5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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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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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5-14 ㅣ No.189606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러나 같은 사랑이라는 말 안에도 서로 다른 깊이와 방향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랑을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에로스입니다. 부족함에서 시작되는 사랑입니다.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내가 채워지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끌리는 마음, 그것이 에로스입니다. 두 번째는 필로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 사이의 사랑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함께 선을 추구하는 관계입니다. 친구는 또 다른 나 자신이라는 말처럼, 서로를 통해 더 나아지는 사랑입니다. 이 두 사랑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족함에서 시작되는 사랑,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전혀 다른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위에서 내려오는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입니다. 부족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만하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감정의 확인이 아닙니다. “너는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느냐?”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완벽하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사랑 안으로 이끄십니다.

 

성서는 아름다운 이야기, 희망찬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한 인간의 이야기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서로 다투고, 죽이는 이야기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허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아내의 탓으로 돌렸던 아담이 있었습니다. 동생을 시기해서 죽인 카인이 있었습니다. 동생을 팔아넘긴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부하를 시기했던 왕도 있었습니다. 스승을 팔아넘긴 제자도 있었습니다. 스승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제자도 있었습니다. 성서는 어째서 인간의 나약함을, 인간의 잘못을, 인간의 교만을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럼에도 인간을 사랑하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완벽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 때문에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봉성체를 다니면서 이 아가페의 사랑을 자주 만납니다.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굳어가는 형제님이 있습니다. 말도 어렵고,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우들이 그 형제님을 위해서 작은 갈비탕을 만들어 옵니다. 정성스럽게 끓여서, 드시기 좋게 준비해서 가져옵니다. 또 어떤 분은 마사지해 줍니다. 이것은 한 번쯤은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누구나 한 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님은 매일 찾아갑니다.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없이 곁에 있어 줍니다. 또 어떤 자매님은 하모니카를 연주해 줍니다. 김밥을 싸서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 번이 아닙니다. 매주, 반복해서, 꾸준히 이어지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의무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계산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한 자매님은 뇌졸중으로 10년째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지극 정성으로 아내를 돌보며, 매년 유람선 여행을 함께 갑니다. 이 또한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 또한 계산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저도 1년에 두 번 병원의 예배실에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느낍니다. , 여기에도 하느님의 사랑이 살아 있구나. 이 사랑이 무엇입니까? 에로스입니까? 필로스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아가페입니다. 에로스가 나는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사랑이라면, 필로스가 우리는 함께 좋다고 말하는 사랑이라면, 아가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그래서 너에게 준다.” 이 사랑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아가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부활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받기 위해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받았기 때문에 주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대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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