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6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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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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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5-15 ㅣ No.189621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요한 16,20-23ㄱ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목적과 가치를 찾고자 하는, 다시 말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일상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 하나를 하면서도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곤 하지요. 그런 우리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쉽고 편한 길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나쁜’ 거라고, 내가 뭔가 죄를 지어서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내가 겪는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 받아들이고, ‘이유’를 찾아 합리화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 안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하느님께서 고통이라는 포장지로 싸주신 선물이 크고 귀한 것일수록, 그 소중한 선물을 지키기 위해 겹겹히 쌓인 고통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는 작업이 너무나 힘들고 괴롭지요. 그러나 고통이라는 포장지 안에 숨은 귀한 선물을 발견하고 나면 하느님께서 왜 나에게 그런 고통을 주시는지, 그 고통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 고통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 막막하기만 한 ‘벽’이 아니라,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넘을만한 ‘언덕’으로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그 안에 숨은 선물을 곧 누리게 된다는 희망이 그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주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드신 ‘산고’(産苦)입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쌓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 비유 속 여인이 기뻐하는 것은 그저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가 아니라, ‘나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십자가를 나와 상관 없는, 그래서 피하고 싶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자 ‘나의 십자가’로 받아들일 때, 그 후에 따라오는 영광과 부활도 ‘나의 것’이 되고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겁니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부활하신 주님을 내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고통은 내 앞에서 치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품어서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극복한 고통이 나를 하느님 나라로 더 가까이 올라가게 만드는 ‘계단’이 됩니다. 부활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분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이 주는 슬픔과 절망을 기쁨과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감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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