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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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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성모의 밤을 보냈습니다. 구성은 미사 참례 후 성모의 밤 행사를 하였는데 장미 꽃과 촛 불을 들고 들어가서 성모님께 헌화 및 촛불을 봉헌하는 예식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전례와 강론, 묵주 기도를 받쳤습니다. 묵주기도 중에 의미 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묵주기도는 묵상인가 아니면 염경기도인가? 라는 질문을 예전에 어느 신부님으로 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은 묵상입니다. 염경기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환희의 신비를 받치는데 신자들이 각단이 시작할때 5명의 신자들이 나와서 각기 묵상한 것을 나름 준비해서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발표 안에서 그분들의 나름의 신앙의 정수를 들어보고 그 안에 머무는 것도 보았습니다. 환의 신비 1단에서 잉태 소식에 대한 성모님의 반응에 대한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어 보면서 역시 신부님들의 강론은 넘사벽이다는 것을 항상 깨닫습니다. 깊은 침묵 중에 조용한 묵상과 기도, 훈련, 신부님들의 내려 놓는 모습을 통해서 더욱 믿음의 정수를 봅니다.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인류가 암혹이었다면 성모님의 순종으로인류는 구원의 여정으로 넘어간다.
어제 신자들이 나눈 것과는 별개로 묵주기도중에 환희 신비를 묵상해 봅니다. 환희 신비를 묵상하면서 인간에게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신부님의 강론, 성모님의 인생을 보더라도 미리 예견되어서 예수님을 잉태한 것이 아닙니다. 각본대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서는 각본이 있었지는 몰라도 성모님 자신 안에서는 각본이 없는 일입니다. 결혼을 앞둔 처녀에게 아이를 임신한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혼돈이라든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인간적인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온전히 순종하시고 봉헌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봅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간이 어둠으로 들어갔다면 성모님의 순종으로 인간은 구원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의 순종은 성모님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시편 23장의 마음이 성모님에게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들어가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고 걸어가신 길입니다. 엘리 사벳을 찾아보신 것도 하늘 길을 걸어가는 분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나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서로 공경합니다.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리고 성모님은 엘리 사벳의 성심을 바라보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동행입니다. 받아들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입니다. 예수님은 궁전같은 곳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밤기운이 있고 으쓱한 외양간에서 당신의 아들을 낳으십니다. 가장 칠흑같은 어둠이고 가장 별볼일 없는 곳에서 주님이 태어 나신 것입니다. 가장 성스런 분이 말입니다. 그분을 낳는 성모님의 모습과 감정, 힘든 분만의 과정 자체만도 힘이 든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환경도 호락 호락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 상황을 받아들이시고 아들 예수를 낳으시는 성모님입니다. 성전에 봉헌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 순간 시메온으로 부터 듣는 것은 예수님이 앞으로 어떤 인물이 될 것이며 어찌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세상의 표적이 될 것이다라는 것을 듣습니다. 그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온전히 봉헌 하시는 성모님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 중에 항상 얼굴이 자신에 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상 사람들은 세상에 모든 힘든 일로 인해서 쓰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져서 저 하늘을 보고 낙담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일어서서 하느님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자기 감정 자기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주님 앞으로 온전히 다가서시는 모습과 같습니다. 온전히 봉헌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묵주기도의 마지막인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으심입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무엇을 찾을까요? 왜 찾을 까요? 하와가 악마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그 원인은 불순종입니다. 그 불순종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떨어져 나갑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암혹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내가 어찌 해보려고 하다가 나의 한계 상황 넘어에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않되니 결국은 우리 자신이 좌절하거나 주님을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상황도 한계 상황입니다. 인간으로 감당할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 안에 답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순종입니다. 내려 놓고 나를 비우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승천 축일입니다. 승천 ? 오늘 복음에서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느님의 오른 편에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 안에 계신것과 같습니다. 삶과 죽음을 넘어 모든 것 안에 계신다. 그것이 승천이라고 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시지만 그것을 성령 안에서 볼 수 잇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 예수 성탄이라면 사람이 말씀으로 변환 되신 것이 승천이라고 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몸으로 다가오셨다면 이젠 모든 영역에서 모든 사람안에 모든 피조물에게 당신의 영이 작용하신 다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유한한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유한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은 영원한 것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고 의탁하고 주님과 하나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안에 내것이 있으면 불가합니다.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도 예수님이고 구원의 근원이신분도 예수님입니다. 구원의 길을 걷는데 가장 좋은 모델은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은 온전히 순종하고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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