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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위대한 분께는 오직 위대한 것만을 청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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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10,51-52) 찬미 예수님! 연중 제8주간 목요일입니다. 본격적인 강론에 앞서, 우리들의 얄팍한 기도 생활을 꼬집는 아주 뼈 때리는 우화 하나를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한 형제님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허둥지둥 차를 몰고 성당 주차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미사 시간은 다 되었는데 주차장은 이미 꽉 차서 차를 댈 곳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형제님은 식은땀을 흘리며 운전대를 꽉 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발 지금 당장 주차할 빈자리 하나만 딱 주십시오! 만약 자리 하나만 주시면, 제가 앞으로 매주 주일 미사에 절대 안 빠지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기적처럼 눈앞에서 차 한 대가 후진을 하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반짝이는 빈자리를 발견한 형제님은 기뻐하며 하늘을 우러러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이고 주님,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방금 제가 혼자 힘으로 빈자리 하나 찾았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께 참 많은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이번 승진 심사에서 꼭 통과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 병원에 가는데 큰 병이 아니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거나, 우연히라도 일어날 확률이 꽤 있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능한 일'만을 두고 기도하면 우리 영혼에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깁니다.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방금 전 우화의 형제님처럼 이게 하느님이 들어주신 건지 아니면 내 노력과 우연의 결과인지 헷갈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붙으면 처음에는 "주님 감사합니다!" 하다가도, 돌아서면 '그래도 우리 애가 밤잠 안 자고 과외받은 보람이 있네.' 하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느님은 내가 밥상을 다 차려놓았을 때 숟가락 하나 얹어주는 조수나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런 식의 쩨쩨한 청원 기도는 백날을 바쳐도 우리의 '믿음'을 단 1밀리미터도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기도의 차원을 우주 끝까지 끌어올린 위대한 걸인 한 명을 만납니다. 티마이오스의 아들,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입니다. 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르 10,47).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으며 잠자코 있으라고 윽박지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십니다. 바르티매오는 자신의 전 재산이자 유일한 이불이었던 겉옷을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튀어 올라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여러분이 만약 평생 구걸만 하던 바르티매오라면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아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청했을 것입니다. "주님, 저 사람들이 하도 텃세를 부려서 구걸하기가 힘듭니다. 목이 좋은 길목 하나만 잡아주십시오." 또는 "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금화 열 닢만 주십시오." 이것은 부자였던 예수님의 후원자들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받았다면 그는 '예수님 일행이 참 적선 한 번 후하게 하네'라고 생각하며 며칠 배불리 먹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청원은 사람들의 상식을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마르 10,51). 이것은 당시 의학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확률 0퍼센트의 미친 청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바르티매오를 꾸짖고 말렸던 이유도, 단순히 그가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어디 일개 거지가 분수도 모르고 저런 불가능한 헛소리를 빽빽 지르느냐"는 세상의 조롱이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불가능한 청원을 듣고 화를 내시기는커녕, 가장 완벽한 구원의 선언을 내리십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10,52). 왜 불가능한 것을 청했는데 '믿음'이 구원했다고 하실까요? 불가능한 것을 청한다는 것은, 내 앞에 서 있는 이분이 단순히 병을 좀 고치거나 빵을 나누어주는 훌륭한 랍비가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느님 본인'이심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인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4세기, 고대 세상을 제패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철학자 아낙사르코스(Anaxarchus)의 역사적 일화는 오늘 복음의 신비를 기가 막히게 꿰뚫어 줍니다. 어느 날 철학자 아낙사르코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재무관을 찾아가 100탈렌트 (오늘날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했습니다. 깜짝 놀란 재무관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하며 대왕에게 달려가 고자질했습니다. "폐하, 저 철학자가 폐하의 은총을 믿고 아주 정신이 나갔습니다. 감히 100탈렌트라는 도저히 불가능한 금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화를 내기는커녕 껄껄 웃으며 재무관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지금 당장 그가 요구한 돈을 1원도 빠짐없이 내어 주어라. 저 철학자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위대하게 대접한 사람이다. 그는 내가 그 엄청난 금액을 줄 수 있을 만큼 막강한 부를 가진 왕이며, 또한 그 청을 거절하지 않을 만큼 관대한 군주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어주었다. 그는 불가능한 것을 청함으로써 군주인 나를 진정으로 존중한 것이다." (출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우리는 하느님을 우주의 황제로 대접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동네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대접하고 계십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쩨쩨하게 "감기 좀 낫게 해주세요", "주차장 빈자리 하나만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참으로 서운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100탈렌트를 청했던 철학자처럼, 눈을 뜨게 해달라고 매달렸던 바르티매오처럼, 우리의 상식과 능력을 완전히 박살 내는 '불가능한 청원'입니다. 제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 불가능한 목표를 청하고, 그것이 눈앞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목격할 때마다 제 영혼에는 말할 수 없는 벅찬 기쁨이 차오릅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의 이 당돌하고 무모한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께서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지금 저와 똑같이 뛸 듯이 기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가 그분을 우주 최고의 권능을 지닌 참 하느님으로 굳게 믿어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갈릴래아 호수 위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주님, 저도 물 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 (마태 14,28)라고 외쳤던 베드로 사도의 그 거룩한 무모함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과학적으로 100퍼센트 불가능한 것을 청했기에, 물 위를 두 발로 걷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오상 성인 비오 신부님의 실화도 이를 생생하게 증명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온통 돌밭뿐인 폐허가 된 이탈리아 남부의 척박한 산골 마을 산조반니 로톤도에서, 비오 신부님은 "이곳에 유럽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병원을 짓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신부님의 주머니에는 동전 몇 닢이 전부였습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며 비웃었지만, 신부님은 "하느님은 무한하시니 무한한 것을 청해야 한다"며 뚝심 있게 밀어붙이셨습니다. 그 불가능한 청원의 결과, 오늘날 그 산골짜기에는 유럽 최고 수준의 현대식 병원인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집'이 우뚝 서서 매일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출처: 알레산드로 다 리파보타니, 『오상의 비오 신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너무 큰 것을 청할 때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라, 너무 작은 것을 청할 때 슬퍼하시는 분이십니다. 위대하신 하느님께는 오직 위대한 것만을 청하십시오. 불가능을 청하는 자만이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증명하는 기적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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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27 |
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09:27 | 최원석 |
| 189826 |
전삼용 신부님_위대한 분께는 오직 위대한 것만을 청하십시오 |
09:21 | 최원석 |
| 189825 |
양승국 신부님_단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간절함! |
09:21 | 최원석 |
| 189824 |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5/27) : 연중 제8주간 목요일 |
09:21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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