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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9일 (목)
(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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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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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52 ㅣ No.192729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서 제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너는 하느님을 잘 아는가? 이것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안다고 말할 수 도 없고 모른다고? 안다 모른다는 것의 개념이 아니라고 봅니다. 안다는 것은 정량화 되어 있는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주님을 안다는 것을 수치적으로 표현? 그것 보다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령이 이끄시는데로 성령이 말하면 말하는데로 말하는것을 우리는 주님을 증언한다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주님을 지식적으로 표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죽인 인물이 그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안다 모른다는 계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것은 성령 안에서 주님의 이끄심에 내어 맡기고 그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그 참 자아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 아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더 중요한것은 중요한 경계조건인 하느님에게 내어 맡기는 삶이 정작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렇고 구신약의 예언자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였기에 눈 앞에 있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깊은 관상 속에 하느님에게 나를 내어 맡기지 못해서 눈앞에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갇혀있는 사람은 동물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간의 동물적인 속성에 같혀 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헤로데가 주님을 죽인다고 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고마운 것인데 주님의 반응은 고마운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십니다. 왜?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이세상에 오신분입니다.구원을 알았더라면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서 부활, 승천의 빠스카의 사건을 알았더라면 예수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주님의 활동하심에 아무런 말씀을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런 영적으로 눈이 먼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심판하러 올때야 나를 볼 것이다. 그때는 늦은 것입니다. 사람이 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때를 잘못알면 심판이요 그렇지 않고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면 매일이 천국입니다. 하느님이 중심인데 그것이 천국이지요. 참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어디를 가는지 모르고 살다가 죽어서 지옥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대부분이 그런 혈실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에 놓이고 싶지 않으면 매일 매일 주님 앞에서 깨어 있어야 겠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성령께 내어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레이더가 꺼지면 죽음의 순간에 주님을 만나게 되니 하루 빨리 매순간 주님안에서 머물면서 참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삶은 우리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성령께 나를 내어 맡기고 온전히 당신 뜻에 순종하면서 나를 성화로 이끄심에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도 성령께 나를 내어드리고 한발 한발 내 딛으며 나의 성화로의 길을 걸어갑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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